진행중

나주목 향청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8월 21일 (월) 15:39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나주목향청.jpg |사진출처= |대표명칭=나주목 향청 |영문명칭= |한자=羅州牧 鄕廳 |주소= |소장처= |지정번호...)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나주목 향청
나주목향청.jpg
대표명칭 나주목 향청
한자 羅州牧 鄕廳



해설문

국문

나주목 향청

항청은 지역 양반들이 사회적 · 정치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모이던 곳이다. 조선시대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 기관으로 지역 양반들이 나서서 지방행정의 보조역할을 하며 지역의 풍속을 살폈다. 향청 건물이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어 보존 가치가 높다.

나주목 향청은 1911년경 나주재무서 청사로 사용되었고, 이후 나신면사무소, 나주수리조합 청사, 나주농지개량조합(나주농업기반공사) 청사로 사용되었다. 1972년 나주농지개량조합 새 청사(철근콘크리트 2층 구조)를 신축하면서 전통 한옥 건물이 없어지고 지하 유구도 심하게 훼손되었다. 2017년 발굴조사를 거쳐 지금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향청은 조선 후기에 향사당 또는 유향소로도 불렸으며, 1897년 나주목에서 발간한 『금성읍지(錦城邑誌)』에 향사당으로 되어 있어 편액 명칭을 향사당으로 하였다.

향청 우물

허튼쌓기*로 만든 우물로,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허튼쌓기 : 여러 가지 모양과 크기의 돌로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

향청 문간채 터

문간채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1칸이며, 중앙 칸은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양쪽 칸은 창고나 온돌방 용도로 추정된다. 발굴조사에서 조선 후기 백자류, 도기류, 기와류가 출토되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나주목 향청

항청은 조선시대 지역 양반들이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 기관이다. 지역 양반들이 나서서 지방 행정의 보조 역할을 하며 지역의 풍속을 살피고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지켰다. 현재 한국에 향청 건물이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주목 향청은 1911년경 나주재무서 청사로 사용되었고, 이후 나신면사무소, 나주수리조합 청사, 나주농지개량조합(나주농업기반공사) 청사로 사용되었다. 1972년 나주농지개량조합 새 청사(철근콘크리트 2층 구조)를 신축하면서 원래의 건물은 철거되었고 지하 유구도 심하게 훼손되었다. 지금의 향청 건물은 2017년 발굴조사를 거친 후 2023년에 다시 지었다.

건물 정면에는 “향사당”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향사당은 조선 후기에 향청을 부르던 이칭이며, 1897년에 발간된 『금성(지금의 나주) 읍지』에는 향청을 향사당으로 기록하였다.

향청 우물

이 우물은 원래 향청 앞에 있던 우물을 재현한 것이다. 여러 가지 모양과 크기의 돌로 불규칙하게 쌓아 만들었다.

향청 문간채 터

이곳은 향쳥의 문간채가 있던 곳이다. 문간채는 정면 7칸 규모였으며, 가운데에 출입문이 있고 양옆에 창고나 온돌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조선 후기 백자류, 도기류, 기와류가 출토되었다.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