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고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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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Godalsa Temple Site, Yeoju
여주 고달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여주 고달사지
영문명칭 Godalsa Temple Site, Yeoju
한자 驪州 高達寺址
주소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1-1번지 외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382호
지정(등록)일 1993년 7월 23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60,033㎡
웹사이트 여주 고달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달사는 혜목산(우두산) 기슭에 있으며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신라 말기의 대표적인 선승이었던 원감국사 현욱(玄昱, 787∼868)과 진경대사 심희(審希, 855∼923)가 머물렀으며, 고려시대에는 원종대사 찬유(璨幽, 869~958) 등 당시 불교계를 선도했던 유력한 승려들이 주석하면서 중심적인 사찰이 되었다. 특히, 고려 광종 때에는 왕실과 중앙정부의 후원을 받아 전국 3대 선원 중에 하나로 그 위상이 높았다. 조선시대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내용이 많지 않다. 그런데 여러 번 발굴 조사한 결과 고달사는 조선시대에 서서히 쇠락하다가 임진왜란 직후에 폐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을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원종대사탑과 탑비, 석조대좌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석조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고달사에 세워졌던 쌍사자 석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원종대사 탑비의 비신은 여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들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우수한 기법의 석조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고달사지에서 멀지 않은 혜목산 기슭에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의 저자 백운화상 경한(景閑, 1299~1374)이 머물렀던 ‘취암사(鷲巖寺)’가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조사를 통하여 고달사지에 남아있는 석조문화재의 성격, 취암사의 정확한 위치와 역사 등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영문

  • Godalsa Temple Site, Yeoju

2019

This is the former site of Godalsa Temple. It is said that the temple was founded in 764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Some of the most prominent monks of Seon Buddhism, such as Wongam (788-869), Jingyeong (855-923), and Wonjong (869-958), resided at this temple.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temple received state funding and even came to be known as one of the three great temples of Seon Buddhism. It is believed that the temple went out of use around the 17th century.

A series of excavations conducted here since 1998 revealed nine stone foundations and traces of 28 buildings, four wall sections, and two stone pagodas dating back from the late Goryeo period to the Joseon period (1392-1910). Inscribed roof tiles and various types of earthenware were also found at the site.

Among the remaining structures are a stupa (National Treasure No. 4), a stele and stupa of Monk Wonjong (Treasures No. 6 and 7), and a stone pedestal (Treasure No. 8), which exemplify the ornate stone artwork of the Goryeo period.

2023

This archaeological site, located at the base of Hyemoksan Mountain, is the former location of Godalsa, a Buddhist temple said to have been founded in 764 during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Prestigious leaders of Korean Buddhism, including prominent monks of the Meditative (Seon) School such as Hyeonuk (788-868) and Simhui (855-924) of the late Silla period, as well as Chanyu (869-958)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lived at Godalsa Temple, making it a major hub of Buddhism. In particular,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jong (r. 949-975) of Goryeo, Godalsa held high status as one of three large temples that received funding from the royal family and central government. According to archaeological excavations, the temple slowly declined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pletely shutting down shortly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Godalsa Temple Site is home to several stone artifacts of historical value, such as a stupa (National Treasure), a stupa and stele of Monk Wonjong (Treasures), and a stone pedestal (Treasure). The site was also home to a stone lantern, which is now exhibited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Meanwhile, the body stone of the stele for Monk Wonjong is kept at the Yeoju Museum. These artifacts are recognized as cultural heritages that exemplify the ornate stone artwork of the Goryeo period.

In addition, located at the foot of Hyemoksan Mountain near Godalsa Temple was Chwiamsa Temple, where the monk Gyeonghan (1299-1374) resided. Gyeonghan is best known for writing the Anthology of Great Buddhist Priests’ Zen Teachings (commonly known as “Jikji”), the world’s oldest extant document printed with movable metal type.

Going forward, it is hoped that continued archaeological surveys and research will reveal the character of the stone cultural heritages remaining at Godalsa Temple Site, as well as the exact location and history of Chwiamsa Temple.

영문 해설 내용

2019

고달사는 통일신라시대인 764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원감국사(788-869), 진경대사(855-923), 원종대사(869-958) 등 선종을 대표하던 승려들이 주석하였다. 고려 때인 10세기에는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선종의 3대 사찰로 번창하기도 했다. 고달사는 17세기경 폐사한 것으로 보인다.

1998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통일신라 후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까지의 건물터 28동, 담장지 4기, 탑지 2기, 축대 9기 등의 유구들이 확인되었다. 또 명문이 새겨진 기와와 다양한 도기 등의 유물도 발굴되었다.

특히 이곳에는 승탑(국보 제4호)을 비롯하여 원종대사의 탑비와 탑(보물 제6, 7호), 석조대좌(보물 제8호) 등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우수한 기법의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다.

2023

혜목산 기슭에 있는 이 유적은 764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고달사의 터이다. 신라 말기의 대표적인 선승인 현욱(787-868), 심희(855-923)와 고려시대의 찬유(869-958) 등 당시 불교계를 선도했던 유력한 승려들이 주석하면서 고달사는 중심적인 사찰이 되었다. 특히, 고려 광종(재위 949-975) 때에는 왕실과 중앙정부의 후원을 받아 전국 3대 선원 중에 하나로 그 위상이 높았다. 조선시대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내용이 많지 않다. 발굴 조사 결과 고달사는 조선시대에 서서히 쇠락하다가 임진왜란 직후에 폐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달사지는 승탑(국보), 원종대사 탑과 탑비(보물), 석조대좌(보물)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석조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고달사에 세워졌던 쌍사자 석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원종대사 탑비의 비신은 여주박물관에 있다. 이들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우수한 기법의 석조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고달사지에서 멀지 않은 혜목산 기슭에는 경한(1299-1374)이 머물렀던 취암사가 있었다고 한다. 경한은 “직지”라고도 알려진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조사를 통하여 고달사지에 남아있는 석조문화재의 성격, 취암사의 정확한 위치와 역사 등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