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청당 암각
쌍청당암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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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쌍청당암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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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淸堂巖刻 |
주소 | 대전광역시 동구 |
지정(등록) 종목 |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
지정(등록)일 | 2021년 7월 19일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석각류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쌍청당 암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쌍청당암각은 크게 다듬지 않은 자연암석에 글자를 새겨 넣은 일종의 지명각석(地名刻石)으로 앞면에는 “쌍청당수옹이묘재건방이백오십보 백대(雙淸堂睡翁二墓在乾方二百五十步 百代)”, 옆면에 “청풍(淸風)”, 뒷면에 “삼한정기(三韓正氣)”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쌍청당(송유, 1388~1446)과 수옹(송갑조, 1574∼1628)의 묘는 서북쪽 250보 되는 곳에 있다. 백대의 청풍이오 삼한의 정기로다.”라는 뜻이다.
이 글귀는 1687년(숙종13)에 김수증(金壽增)이 팔분체(八分體)로 썼다는 기록이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전하는데, 김상헌의 손자인 김수증은 제월당 송규렴의 손위 처남으로 우암 송시열과도 깊은 교분을 나누었던 사이였으며, 팔분체에 능했던 인물이다.
이처럼 쌍청당 암각은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정계에 복귀한 우암이 회덕에 은진송씨의 뿌리를 내린 쌍청당 송유와 자신의 아버지 수옹 송갑조를 위해 김수증에게 부탁하여 각자했다는 이야기가 담긴 지명각석으로 예술적‧지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암각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1607-1689)이 학자 김수증(1624-1701)에게 부탁하여 1687년에 새겼다고 전해진다. 김수증은 송시열의 제자 송규렴(1630-1709)의 처남으로 송시열과도 깊은 교분을 나누었던 사이이다.
암각의 이름인 쌍청당은 은진송씨 중 회덕(지금의 대전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송명의의 손자 송유(1388-1446)의 호이다. 송유가 회덕 지역에 살면서 은진송씨는 회덕을 대표하는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커다란 자연암석의 세 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앞면에 새겨진 글씨는 “송유와 송갑조(1574-1628)의 묘는 이곳에서 서북쪽 250보 되는 곳에 있다”는 뜻이다. 송갑조는 송시열의 아버지이다. 옆면과 뒷면에 새겨진 글씨는 함께 “백대의 청풍이오 삼한의 정기로다”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