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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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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4월 26일 (수) 12: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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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Bogyeongsa Temple, Pohang
대표명칭 포항 보경사
영문명칭 Bogyeongsa Temple, Pohang
한자 浦項 寶鏡寺



해설문

국문

보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 내연산(內延山)에 위치해 있다. 신라시대 일조스님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세웠다는 설과 신라 지명법사가 602년(진평왕 25)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 등의 자료를 통해 중창**과 중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1023년(고려 현종 14) 지금의 적광전 앞에 금당탑(현재 오층석탑)을 건립하였으며, 고려 후기에는 원진국사가 사찰에 주석하면서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사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사찰 경내에는 1244년 원진국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원진국사비(보물 지정)와 승탑(보물 지정)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1530(조선 중종 25)년 나라에서 편찬한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통해 보경사의 위치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밖에도 각종 고지도에 보경사가 내연산에 위치한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고지도에 표시된 내연산에는 삼동석(三動石)과 함께 삼용추(三龍湫)라 불리는 폭포가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예로부터 지역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중창에 관한 기록은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 등의 문헌으로부터 17, 18세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679(조섣 숙종 5)년에는 적광전과 대웅전을 중건하였고, 1708(조선 숙종 34)년에는 괘불탱이 조성되었다. 1742(조선 영조 18)년에는 비로자나불도를 적광전에 봉안하였고, 1767(조선 영조 43)년에는 천왕문을 중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1900년대 이후에도 보경사는 꾸준히 중창과 중수를 진행하였으며, 기록에 따르면 1916~1921년 설산당 장욱사 주도로 각 전각의 기단과 오층석탑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대웅전을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 1588년 사명당 유정스님(1544-1610)이 지은 것으로 고려시대 보경사 적광전 앞에 석탑을 세우게 된 내력을 밝힌 기록.
  • 중창: 사찰이나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 중수: 낡은 건축물 따위를 다시 손질하여 고침.
  • 원진국사: 고려시대 고승으로 법명은 승형(承逈, 1171-1221)이다. 고려 강종, 희종, 고종의 우대를 받았으며 보경사 주지를 지냄. 사찰 경내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원진국사비(1224년 조성)가 남아 있음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내연산 보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조선시대인 1530년에 편찬된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각종 고지도에는 보경사의 위치를 비롯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으며, 내연산은 예로부터 다양한 기암괴석과 폭포 등이 있는 명소로 알려져 왔다.

보경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승려 일조가 당나라에서 유학한 후 돌아와 세웠다는 설과 신라 승려 지명이 602년에 세웠다는 설이 있다. 고려시대인 1023년 적광전(보물) 앞에 오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을 세웠고, 1215년 승형(1172-1221)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사찰이 대대적으로 중창되었다. 보경사는 조선시대인 17-18세기에 다시 한번 크게 중창되었다. 1679년에는 적광전과 대웅전이 중건되었고, 1708년에는 괘불탱이 조성되었다. 1742년에는 비로자나불도를 조성하여 적광전에 봉안하였고, 1767년에는 천왕문을 중건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보경사는 꾸준히 중창과 중수를 진행하였다. 1916~1921년에는 각 전각의 기단과 오층석탑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현재 사찰 경내에는 승형을 기리기 위해 1244년에 건립한 탑비(보물)와 승형의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 등 여러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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