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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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Stone Seated Buddha and Excavated Relics of Cheongnyeonsa Temple, Yangju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영문명칭 Stone Seated Buddha and Excavated Relics of Cheongnyeonsa Temple, Yangju
한자 楊州 靑蓮寺 石造如來立坐像 및 腹藏物)
국가유산 종목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94호
지정(등록)일 2020년 12월 3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불상 1구, 복장물 5점
웹사이트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삼성전의 본존상으로 봉안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사찰 재산 목록에는 ‘칠성여래(七星如來)’로 기록되어 치성광여래*로 여겨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석불상은 조선 후기 경상도 일대에서 많이 조성된 ‘불석(佛石)’이라는 연질의 돌로 만든 불상이다. 불석을 이용해 불상을 제작한 대표적인 승려 장인은 승호와 경옥 등으로 기림사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그의 유파에 의해 조성된 18~19세기 불상은 많이 남아있다.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은 풍만한 네모난 얼굴을 가진 상으로 흰색 안료인 호분으로 채색되어 있다. 머리카락의 표현은 소라 모양의 나발**을 만들어 붙이지 않고, 직접 돌을 깎아서 표현해 형식화된 면을 보인다. 이처럼 형식화된 나발 표현은 서울과 경기 일원에서 경주 불석으로 조성한 파주 보광사 응진전 석조불좌상, 서울 삼성암 석조불좌상, 서울 봉원사 석조불좌상에서도 확인된다. 물건을 들고 있지 않으며 3개의 손가락만 옷자락 바깥에 노출시키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경주 불석으로 조성된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불상의 내부에서는 오색사에 묶인 후령통*** 1점과 『묘법연화경』 일부 등이 수습되었다.


  • 치성광여래: 불교에서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 나발: 부처의 머리털.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라 하여 이렇게 이른다.
  • 후령통: 여러 종류의 복장물을 넣은 원통형 용기

영문

Stone Seated Buddha and Relics of Cheongnyeonsa Temple, Yangju

This stone statue enshrined Samseongjeon Shrine of Cheongnyeonsa Temple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in the 19th century. It serves as the shrine’s principal buddha. According to a record from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it is said to depict the “Buddha of the Seven Stars,” suggesting that it was worshiped as Tejaprabha Buddha, a manifestation of the North Star (Polaris).

The statue, painted entirely with white plaster apart from the hair, is made of zeolite rock from Gyeongju, which was commonly used in the Gyeongsang-do region during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monk artisans Seungho and Gyeongok, known for their use of zeolite rock, were active in the area surrounding Girimsa Temple in Gyeongju. There are many remaining statues made by their students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The buddha’s face is plump and square, while his curly hair was carved directly from the stone rather than being attached separately. His hands rest on his knees with only three fingers peaking out from under his sleeves, which is a characteristic feature. The formulaic expression seen in this statue is also found in other zeolite statues in Seoul and the surrounding Gyeonggi-do region.

Five relics were discovered inside the statue, including a container of votive objects bound with five-colored thread and a copy of the Saddharmapundarika Sutra (The Lotus Sutra).

영문 해설 내용

청련사 삼성전의 본존인 이 불상은 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기록에는 “칠성여래”로 기록되어 있어, 북극성을 부처의 모습으로 표현한 치성광여래라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제외한 전체를 흰색 안료로 칠한 이 상은 조선 후기 경상도 일대에서 나던 불석이라는 연질의 돌로 만들었다. 불석을 이용해 불상을 제작한 대표적인 승려 장인은 승호와 경옥 등으로 경주 기림사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그의 유파에 의해 조성된 18~19세기 불상이 많이 남아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네모난 형태이고, 머리의 나발은 따로 만들어 붙이지 않고 직접 돌을 깎아서 표현했다. 양쪽 무릎 위의 두 손은 손가락 3개만 옷자락 바깥으로 노출시키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불상의 형식화된 표현은 서울과 경기 일원에서 경주 불석으로 조성한 여러 불상에서도 확인된다.

불상의 내부에서는 오색실로 묶인 후령통과 『묘법연화경』 등 5점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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