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석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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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석릉
Seongneung Royal Tomb, Ganghwa
강화 석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강화 석릉
영문명칭 Seongneung Royal Tomb, Ganghwa
한자 江華 碩陵
주소 인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182번지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369호
지정(등록)일 1992.03.10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려시대
소유자 산림청
관리자 강화군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793㎡
웹사이트 강화 석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려 21대 왕인 희종의 무덤이다. 희종은 무신이 정권을 잡은 시기에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최충헌의 횡포가 심해지자 그를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재위7년1211에 폐위되어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1237년 인천 용유도에서 세상을 떠나 이곳에 안장되었다.

2002년에 발굴조사를 통해 돌로 만든 사람 조각인 석인상 등이 발견되었고, 12-13세기 청자 제작 전성기 때, 문양을 파고 다른 색의 흙으로 채워 장식하는 상감기법으로 만들어진 찻잔받침 등이 출토되었다. 강화 석릉은 남한지역에 남은 5기의 고려시대 왕릉과 왕비 릉 중의 하나로 고려시대 왕실 묘지를 직접 보고 연구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

영문

Seongneung Royal Tomb, Ganghwa

This is the tomb of King Huijong (1181-1237, r. 1204-1211), the 21st ruler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King Huijong ruled during the period when the military, led by Choe Chung-heon (1149-1219), had strong control over the kingdom and ruled as dictators. In 1211, seven years after he became king, he attempted to assassinate Choe but was unsuccessful. He was forced to abdicate and was exiled to Gyodongdo Island. In 1237, he died on Yongyudo Island.

This tomb was built during the period between 1232 and 1270 when the Goryeo capital had been temporarily moved from Gaeseong (in today's North Korea) to Ganghwado Island during the Mongol invasions. It is one of five Goryeo royal tombs located in today's South Korea.

This tomb is a stone chamber tomb. It is said that the tomb was located by local magistrate Jo Bok-yang (1609-1671) and rebuilt in the 1660s. It was repaired in 1974 and excavated in 2002. Various artifacts were excavated from the tomb, including an inlaid celadon saucer.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고려 제21대 왕인 희종의 무덤이다.

희종이 재위한 기간은 최충헌이 이끄는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시기였다. 왕위에 오른 지 7년만인 1211년에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였고, 폐위되어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1237년 용유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석릉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수도를 강화도로 이전했던 1232년~1270년 사이에 조성되었다. 현재 남한에 남아 있는 5기의 고려 왕릉 중 하나이다.

이 무덤은 돌방무덤이다. 1660년대에 당시 유수였던 조복양이 찾아내어 다시 지었다고 한다. 1974년에 보수되었고 2002년에 발굴조사가 시행되었다. 청자상감 받침과 같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