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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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비
Monument of Jangchungdan Altar
장충단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장충단비
영문명칭 Monument of Jangchungdan Altar
한자 奬忠壇碑
주소 서울 중구 동호로 257-10 (장충동2가)
지정(등록) 종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호
지정(등록)일 1969년 9월 18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대한제국시대
수량/면적 석비 1基, 토지 1㎡
웹사이트 장충단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장충단비는 을미사변 때 희생된 영령들을 위로하려고 장충단에 세운 비석이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 때 경복궁에 침입한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살해하였고 궁내부대신 이경직과 시위대장 홍계훈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일본군에 대항하다 죽었다. 고종황제는 1900년(광무 4)에 이들을 위하여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려고 장충단을 세우고 이때 비석도 함께 세웠다. 1910년 한일병합과 함께 일제에 의해 장충단은 폐지되고 비석도 뽑혔다. 1920년 후반부터 일제는 이곳에 벚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하고 이곳을 '장충단공원'이라 하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장층단비를 다시 찾아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세웠고, 196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장층단(獎忠壇)' 세 글자는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 황제가 쓴 글씨이다. 비석의 뒷면에는 당시 육군 부장이었던 민영환이 쓴 143자가 새겨져 있는데, 장충단을 세우게 된 내력과 의미를 담고 있다.

영문

Monument of Jangchungdan Altar

This monument was erected in 1900 to commemorate the establishment of Jangchungdan Altar, which was dedicated to the brave patriots who sacrificed their lives during the Japanese assassination of Korea’s queen consort Lady Min (1851-1895, posthumously known as Empress Myeongseong).

In the early morning of October 8, 1895, Japanese agents brutally murdered the queen consort at her private royal residence inside Gyeongbokgung Palace. During the incident, the minister of the Royal Household Yi Gyeong-jik (1841-1895), the commander of the royal guard Hong Gye-hun (?-1895), and many soldiers died while trying to defend against the Japanese intruders. Emperor Gojong (r. 1863-1907) had a shrine and altar built in 1900 to honor these individuals. He named the complex Jangchungdan, meaning “Altar to Encourage Loyalty.”

After Korea was annexed by Japan in 1910, Japanese authorities demolished the altar and removed this monument. In the late 1920s, the colonial government turned the area into a park and filled it with cherry blossom trees. After Korea regained independence in 1945, the monument was rediscovered and erected at the site of today’s Silla Hotel but was moved in 1969 to its current location.

The front of the monument features its name inscribed in the handwriting of Emperor Sunjong (r. 1907-1910), who was the crown prince at the time. The back of the monument records the story and meaning behind the altar’s construction. The text was composed by the civil official Min Yeong-hwan (1861-1905) and consists of 143 characters.

영문 해설 내용

장충단비는 1895년 조선의 왕후인 민씨(1851-1895, 명성황후로 추존) 시해 사건 때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제단인 장충단에 1900년에 세운 비석이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에 침입한 일본인들은 왕후인 민씨를 참혹하게 살해하였다. 당시 궁내부 대신 이경직(1841-1895)과 시위대장 홍계훈(?-1895)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일본 침입자들에게 대항하다 죽었다. 1900년 고종은 이들을 위하여 사당과 제단을 세웠고, ‘충절을 권면하는 제단’이라는 뜻의 ‘장충단’이라 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과 함께 일제에 의해 장충단은 헐렸고 비석도 뽑혔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이곳에 벚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하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장충단비를 다시 찾아, 공원 맞은편에 있는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세웠다가, 196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이름은 비석 건립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재위 1907-1910)의 글씨이다. 비석의 뒷면에는 문신 민영환(1861-1905)이 쓴 143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장충단을 세우게 된 내력과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