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산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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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산성지
Baesanseong Fortress Site
"배산성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배산성지
영문명칭 Baesanseong Fortress Site
한자 盃山城址
주소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지정(등록) 종목 시도기념물 제4호
지정(등록)일 1972년 6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수량/면적 22933㎡
웹사이트 "배산성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배산성은 고대부터 부산의 중심지를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특히 배산성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수영구 망미동의 동래 고읍성과,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동래구 명륜동의 동래 읍성과 더불어 부산 지역 행정 중심지의 변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애초에 배산성은 배산의 7부 능선을 둘러싼 이중 토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2017년~2018년 두 차례의 정밀한 발굴 조사를 통해 토성이 아닌 석성으로 밝혀졌다. 1호 집수지물을 모아두는 장소 아래에 있는 높이 4m 규모의 성벽은 네모난 돌로 품(品)자형 쌓기를 하였는데, 성 바깥벽 기초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기단보축(基壇補築)을 덧댄 것을 보면 전형적인 신라식 석축 산성돌을 쌓아 만든 산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수리된 곳으로 추정되는 부분은 위로 갈수록 약간씩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로 쌓았는데 이것은 통일신라 시대에 성행했던 성벽 쌓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잔뫼정 인근에서 발굴된 둥근 모양의 계단식 집수지 두 군데 중 지름 13m, 깊이 4.6m의 2호 집수지는 영남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집수지 안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까지 사용했던 생활용 토기와 수백 점의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세금으로 받은 곡물의 관리 장부로 추정되는 ‘乙亥年(을해년, 555년, 615년, 675년 중 하나)’이라는 글자가 적힌 목간(木簡)*과 대나무 발, 나무 기둥 등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었다.

집수지 부근의 서쪽 경사면에서는 6m 높이의 축대가 발견되었는데 안쪽 평지에서 산성의 공공 건물로 추정되는, 길이 13m 이상의 대형 건물터도 확인되었다.


  • 목간(木簡): 종이를 대신하여 나무판에 적은 문서

영문

Baesanseong Fortress Site

This stone fortress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57 BCE – 668 CE). The location of this fortress is strategically important as it commands a view of most of the downtown area of Busan.

From 2017 to 2018, excavations were conducted in two stages. Inside the fortress, two round water-collecting ponds with terraced retaining walls were found. One of them is the largest of its kind found in the Gyeongsang-do area, measuring 13 m in diameter and 4.6 m in depth. A variety of artifacts were discovered which date back to the Three Kingdoms through Unified Silla (668-935) periods. These include very rare artifacts such as wood slips which are presumed to be grain-tax ledgers, a bamboo scroll, a wooden pole, house earthenware, and hundreds of roof tile shards.

Next to the ponds are a 6 m-high stone foundation and a 12.8 by 10 m building site.

영문 해설 내용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이 있던 곳은 부산의 중심지를 대부분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다.

2017~2018년 두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성 내에서는 둥근 모양의 계단식 집수지 2기가 발굴되었는데, 그중 2호 집수지는 지름 13m, 깊이 4.6m로 영남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했던 생활용 토기와 수백 점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특히 세금으로 받은 곡물의 관리 장부로 추정되는 목간, 대나무 발, 나무 기둥 등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었다.

집수지 부근의 서쪽 경사면에서는 6m 높이의 축대가 발견되었고, 안쪽 평지에서는 대형 건물터가 길이 12.8m, 너비 10m 규모로 발굴됐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