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영남루
밀양 영남루 Yeongnamnu Pavilion, Mir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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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밀양 영남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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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Yeongnamnu Pavilion, Miryang |
한자 | 密陽 嶺南樓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40 |
지정(등록) 종목 | 보물 제147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밀양 영남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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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2021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룬 누각이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기둥 사이가 넓은 데다 굵은 기둥으로 누마루를 높여서 웅장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현판*에 어울리는 면모이다. 좌우 부속 건물로 능파각(凌波閣)과 침류각(枕流閣)을 날개처럼 거느리고 있다. 침류각으로 이어지는 지붕이 경사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층을 이뤄 눈길을 끈다.
영남루라는 이름은 고려 말인 1365년 밀양을 다스리던 김주(金湊)가 통일신라 시대에 있었던 영남사(嶺南寺)라는 절터에 누각을 세우면서 절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고을에 온 손님을 대접하고 묵게 하던 객사(客舍)의 부속 건물로 쓰였으며, 여러 차례 고쳐 짓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다시 세우기도 했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 밀양 부사 이인재(李寅在)가 새로 지었다. 누각 안에 걸린 ‘영남제일루’와 ‘영남루’ 현판은 그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각각 열한 살과 일곱 살 때 썼다고 한다. 영남루에는 유명 문인들의 시와 글을 새긴 현판이 한때 300개나 걸려 ‘현판 전시장’으로 불렸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문인들이 영남루를 읊었던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해 온다.
- 현판(懸板):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널조각
2022
밀양강의 아름다운 풍광과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뤄 우리나라 전통 누각(樓閣)의 진수를 보여준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정면 5칸, 측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기둥 사이를 넓게 잡고 굵은 기둥으로 누마루를 높여 웅장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이름에 걸맞다. 좌우 부속 건물로 능파각(凌波閣)과 침류각(枕流閣)을 날개처럼 거느리고 있다. 영남루라는 이름은 고려 말인 1365년 지밀성군사(知密城郡事) 김주(金湊)가 영남사(嶺南寺)가 있던 절터에 새 누각을 지으면서 붙였다. 조선시대에는 객사(客舍)*부속 건물로 쓰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 밀양 부사 이인재(李寅在)가 새로 지었다. 유명한 문인들의 시와 글을 새긴 현판이 한때 300개나 걸려 ‘시문(詩文) 현판 전시장’으로 불렸다. 북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천진궁(天眞宮)은 1665년 객사 부속 건물로 건립되었으나 곧 객사로 활용됐다. 영남루 앞과 천진궁 입구 땅바닥에는 마치 장미나 국화 꽃송이가 촘촘하게 박혀 있는 듯한 돌꽃[석화ㆍ石花]이 깔려 있다.
- 객사: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던 곳으로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됨.
영문
Yeongnamnu Pavilion, Miryang
2021
Yeongnamnu Pavilion was built in 1844. Located on a cliff along the Miryanggang River, the pavilion harmonizes with its beautiful surroundings and is considered a masterpiece of wooden architecture of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is regarded as one of Korea’s three representative traditional pavilions, along with Chokseongnu Pavilion in Jinju and Bubyeongnu Pavilion in Pyeongyang.
This pavilion was first established in 1365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by the local magistrate Kim Ju (1339-1404). At the time, it was located within the grounds of Yeongnamsa, a Buddhist temple, after which it is named. During the Joseon period, the pavilion was used as an auxiliary building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s guesthouse, serving as a reception and accommodation space for government officials and important guests visiting the region. The pavilion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and was rebuilt afterward. The current pavilion is the result of a major expansion overseen by the local magistrate Yi In-jae in 1844.
The pavilion’s stately look is accentuated by its massive hip-and-gable roof, the large pillars supporting its elevated wooden floor, and the wide intervals between the pillars. Located to the left and right are two auxiliary buildings, namely Neungpagak and Chimnyugak Pavilions, which are connected to the main pavilion via corridors. The roofed corridor leading to Chimnyugak Pavilion is terraced in accordance with the sloping terrain.
Many poems and paintings were created here by renowned literati who visited the pavilion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It is said that, at some point, over 300 plaques featuring various written works hung in the pavilion. The pavilion’s two name plaques are said to have been calligraphed by Yi In-jae’s first and second sons when they were 11 and 7 years old, respectively.
2022
Overlooking the Miryanggang River, Yeongnamnu Pavilion stands in harmony with its beautiful surroundings. As a masterpiece of wooden architecture from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Yeongnamnu is considered one of Korea’s most representative traditional pavilions. Its stately appearance is manifested by its massive hip-and-gable roof, the large pillars supporting its elevated wooden floor, and the wide intervals between its pillars. Its grand scale is further accentuated by its two auxiliary pavilions, which are connected via corridors.
Yeongnamnu Pavilion was first established in 1365 by the local magistrate Kim Ju and stood within the grounds of Yeongnamsa, a Buddhist temple. During the Joseon period, it served as a reception and accommodation space for government officials and important guests. The current building dates to 1844, when the pavilion was rebuilt on a larger scale by the local magistrate Yi In-jae. Over the course of its history, Yeongnamnu Pavilion was visited by many renowned literati who composed poems and paintings inspired by this place. It is said that over 300 plaques featuring various written works once hung in the pavilion.
영문 해설 내용
영남루는 1844년에 지어진 누각이다. 밀양강 절벽의 경관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시대 후반 화려하고 뛰어난 목조 건축물의 걸작으로 여겨진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전통 누각으로 꼽히기도 한다.
영남루는 고려시대인 1365년 당시 밀양군수였던 김주(1339-1404)가 영남사라는 옛 절터에 처음 세웠다. 누각의 이름은 절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밀양 관아 객사의 부속 건물로 쓰였으며, 고을에 온 손님들을 대접하고 묵게 하던 곳이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다시 세우기도 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844년 밀양부사 이인재가 전체적인 규모를 크게 늘려 새로 지은 것이다.
팔작지붕을 얹은 영남루는 기둥 사이가 넓은데다 굵은 기둥으로 누마루를 높여서 웅장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능파각과 침류각이라는 부속건물이 있고, 두 부속건물은 영남루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영남루와 침류각 사이의 복도와 지붕은 경사를 따라 계단식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영남루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명한 문인들이 찾아와 시와 그림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때 영남루에는 시와 글을 새긴 현판이 300개나 걸려 있었다고 한다. 현재 영남루 정면에 걸려있는 두 현판의 글씨는 이인재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각각 11살과 7살 때 썼다고 한다.
갤러리
참고자료
- 밀양 영남루 실측조사보고서, 문화재청, 1999 -> 영남사는 12세기 중반에 이 지역에 있었던 사찰이다. 고려시대의 문인 임춘이 1175년 봄 영남사의 ‘죽루’에 대한 시를 남긴 바 있는데, 이 ‘죽루’를 영남루의 시초가 된 누정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 고종 대에 큰 화재가 나면서 본루와 능파당, 침류당 등의 주요 건물은 피해를 면했으나, 영남루를 포함하는 객사였던 밀주관의 구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밀양 영남루와 천진궁, 영남일보, 2015.11.20.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51120.010370826370001 -> 내부에는 단군과 그 이래 역대 8왕조 시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중앙의 맨 윗자리에 단군의 영정을, 동쪽 벽에는 부여·고구려·가야·고려의 시조를, 서쪽 벽에는 신라·백제·발해·조선의 시조를 모셨다. 일제시대 때 일인들은 위패를 땅에 묻고 이곳을 감옥으로 사용했다 한다. 입구인 만덕문 왼쪽에는 밀양박씨의 시조인 밀성대군의 묘단이 있다. 밀성대군은 신라 경명왕의 장남으로 이곳이 그의 묫자리라 추정된다.
- 밀양 영남루 다녀왔어요 혜윰님과 고즈넉한 힐링, a.k.a holic,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glqgkqehdwl/222182514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