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탁삼재
밀양 탁삼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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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밀양 탁삼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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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 卓三齋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봉의3길 40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7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12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밀양 탁삼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임진왜란 때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왜군과 싸운 김유부(金有富ㆍ1549∼1621)와 병자호란 때 장렬히 전사한 그의 두 아들 기남(起南)과 난생(蘭生), 그리고 남편을 따라 순절한 부인 경주 최씨와 은진 송씨를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세운 사당이다.
‘탁삼’은 ‘탁이(卓異)한 삼강(三綱)*’을 줄인 말로 한집에서 양대에 충(忠), 효(孝), 열(烈)의 삼강을 모두 갖췄다고 하여 조정에서 내린 이름이다. ‘탁이’는 ‘남보다 뛰어나게 다르다’는 뜻이다.
의병을 일으킨 김유부는 아흔 노모를 맡길 곳이 없자 직접 등에 업고 나아가 용감히 싸웠다. 두 아들은 병자호란 때인 1636년 의병으로 출정해 경기도 광주 쌍령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최 씨와 송 씨는 전쟁터로 달려가 남편의 시신을 수습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탁삼재에는 왕이 내린 교지(敎旨) 등 49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사당 옆 충효각(忠孝閣)은 김유부를 기리기 위해 1756년 건립됐다.
영문
Taksamjae Shrine, Miryang
Taksamjae Shrine was built in 1864 to venerate the civilian army commander Kim Yu-bu (1549-1621), his sons Kim Gi-nam and Kim Nan-saeng, and his daughters-in-law Lady Choe and Lady Song.
When Japan invaded Korea in 1592, Kim Yu-bu was determined to join the war, but as he could not leave his elderly mother alone, Kim went to fight the enemies carrying her on his back. During the Manchu invasion of 1637, Kim’s two sons fought as civilian army commanders but died in the Battle of Ssangnyeong in Gwangju. When Lady Choe and Lady Song heard of their husbands’ death, they rushed to the battlefield, brought the bodies home, and then took their own lives.
The name Taksamjae means“House of Three Outstanding Bonds” and refers to the three fundamental principles of human relations in Confucianism: loyalty between ruler and subject, filial devotion between father and son, and matrimonial devotion between husband and wife. This name was bestowed by the royal court in recognition of the fact that all three virtues were fulfilled by two generations of one family.
Forty-nine artifacts, including royal edicts, are stored in the shrine. Chunghyogak Pavilion, located next to the shrine, was built in 1756 to commemorate Kim Yu-bu.
- 교지는 단수, 복수인지 확인 필요.
영문 해설 내용
탁삼재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인 김유부(1549-1621)와 두 아들 김기남, 김난생, 두 며느리 경주최씨와 은진송씨를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세운 사당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유부는 전쟁에 나가 싸울 것을 결심하였으나, 노모를 맡길 곳이 없자 직접 등에 업고 나아가 용감히 싸웠다. 김유부의 두 아들은 병자호란 때인 의병으로 출정해 경기도 광주 쌍령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최씨와 송씨는 전쟁터로 달려가 남편의 시신을 수습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탁삼재라는 이름은 “뛰어난 삼강의 집”이라는 뜻이다. 한집에서 2대에 걸쳐 충(忠), 효(孝), 열(烈)의 삼강을 모두 갖췄다고 하여 조정에서 내린 이름이다.
탁삼재에는 왕이 내린 교지(敎旨) 등 49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사당 옆 충효각은 김유부를 기리기 위해 1756년에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