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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용안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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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1월 13일 (금) 13:0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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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용안서원
밀양 용안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밀양 용안서원
한자 密陽 龍安書院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1길 39-18(내진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97호
지정(등록)일 2001년 9월 27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3동(棟)
웹사이트 밀양 용안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무안면 내진리에 대대로 살고 있는 벽진 이씨(碧珍李氏) 선현(先賢) 네 사람을 봉안한 서원이다. 1813년 처음으로 내진리 영화곡에 사당을 짓고 문안공(文安公) 이견간(李堅幹)과 성산군(星山君) 이식(李軾)을 봉안했다.

이견간은 고려 말 대제학 등을 지낸 유학자로 중국 원나라에까지 이름을 날렸다. 이식은 조선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왕위에 올린 반정(反正)공신이다.

1818년 현재의 용안동으로 옮겨 짓고 용안사(龍安祠)라 불렀으나 고종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용안재(龍安齋)로 이름을 바꿨다. 1922년부터 이사지(李思之)와 이중림(李仲林) 부자를 추가로 모시고 ‘서원’으로 격을 높여 불렀다. 아버지 이사지는 고려 말 왜구 소탕에 큰 공을 세웠고, 아들 중림은 세종 때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서원은 강당, 유생들이 머물거나 제기 등을 준비하는 공간인 시습재(時習齋), 사당으로 이뤄져 있다. 모두 공간을 덧달아낸 툇간(退間)이 없고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민흘림 기둥을 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용안서원은 이견간, 이사지, 이중림, 이식 등 벽진이씨 선현 네 사람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용안서원이 있는 내진리는 벽진이씨가 대대로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이견간은 고려 말 대제학 등을 지낸 유학자로 중국 원나라에까지 학덕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사지는 이견간의 4대손이며 고려 말 왜구 소탕에 큰 공을 세웠다. 이사지의 아들 이중림은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관직을 지낸 무신이다. 이사지의 증손인 이식은 1506년 폭군 연산군(재위 1494-1506)을 몰아내고 중종(재위 1506-1544)이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워 공신이 되었다.

1813년 이견간과 이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처음 지었고, 181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그러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0년에 철거되었으며, 1922년부터 제사를 다시 지내기 시작하여 이사지와 이중림을 추가로 모셨다. 지금의 서원은 1983년에 다시 지었다.

서원은 강당, 사당, 유생들이 머물거나 제기 등을 준비하는 공간인 시습재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툇간(退間)이 없고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민흘림 기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