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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오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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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1월 13일 (금) 09: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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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오연정
밀양 오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밀양 오연정
한자 密陽 鼇淵亭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용평로 477-17(교동)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5호
지정(등록)일 1995년 5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밀양 오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명종 때 성균관 전적(典籍) 등을 지낸 손영제(孫英濟ㆍ1521~1588)가 1580년대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추화산 기슭에 지은 별장이다. 오연(鼇淵)은 큰 자라가 섬을 떠받치고 있듯 나라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그는 예안 현감으로 있으면서 퇴계 이황의 가르침을 받았고, 도산서원 건립에도 기여했다. 마을 이름을 모례(慕禮), 그 앞 내를 추천(鄒川)이라고 불렀다. ‘추천’을 자신의 호(號)로도 썼다. ‘모례’는 ‘예안에서 입은 스승의 은혜를 사모한다’는 뜻이고, ‘추천’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본받겠다’는 다짐이다. ‘추(鄒)’는 맹자의 출생지인 ‘추나라’를 뜻한다.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탄 뒤 재건했으나 다시 소실됐고, 1771년 후손들이 중건했다. 순조 때는 지역 사림이 뜻을 모아 모례서원을 세웠으나 사당이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고, 남은 건물도 1935년 거의 소실된 것을 이듬해 후손들이 새로 지었다. 돌출부에 누마루가 있고 양쪽 온돌방을 배치했다. 1930년대 건물이지만 재료 마감, 건축 방식 등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잇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오연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손영제(1521-1588)가 1580년대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별장이다.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추화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오연정이라는 이름은 “자라 연못의 정자”라는 뜻으로, 큰 자라가 섬을 떠받치고 있듯 나라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오연정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재건했으나 다시 소실됐고, 1771년 후손들이 중건했다. 19세기 초에는 지역 사림들이 이곳에 모례서원을 세웠으나, 19세기 말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은 헐렸다. 오연정을 비롯한 남은 건물들은 1936년 후손들이 새로 지었다. 오연정은 가운데 대청이 있고 양옆에 온돌방이 있으며, 왼쪽 온돌방 앞에는 난간을 두른 누마루가 있다. 1930년대 건물이지만 재료 마감, 건축 방식 등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손영제는 1561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고, 1569년 예안(지금의 안동 지역) 현감이 되었다. 재임 당시 저명한 유학자인 이황(1501-1570)으로부터 학문과 정치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후 이황을 기리는 도산서원을 건립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오연정이 있는 모례마을은 손영제가 “예안에서 입은 스승의 은혜를 사모한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또한 손영제는 마을 앞의 내를 “추나라의 하천”이라는 뜻의 추천(鄒川)이라고 불렀다. 추나라는 맹자가 태어난 곳이며,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본받겠다”는 손영제의 다짐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