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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오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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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오연정
밀양 오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밀양 오연정
한자 密陽 鼇淵亭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용평로 477-17(교동)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5호
지정(등록)일 1995년 5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밀양 오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명종 때 성균관 전적(典籍) 등을 지낸 손영제(孫英濟ㆍ1521~1588)가 1580년대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추화산 기슭에 지은 별장이다. 오연(鼇淵)은 큰 자라가 섬을 떠받치고 있듯 나라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그는 예안 현감으로 있으면서 퇴계 이황의 가르침을 받았고, 도산서원 건립에도 기여했다. 마을 이름을 모례(慕禮), 그 앞 내를 추천(鄒川)이라고 불렀다. ‘추천’을 자신의 호(號)로도 썼다. ‘모례’는 ‘예안에서 입은 스승의 은혜를 사모한다’는 뜻이고, ‘추천’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본받겠다’는 다짐이다. ‘추(鄒)’는 맹자의 출생지인 ‘추나라’를 뜻한다.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탄 뒤 재건했으나 다시 소실됐고, 1771년 후손들이 중건했다. 순조 때는 지역 사림이 뜻을 모아 모례서원을 세웠으나 사당이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고, 남은 건물도 1935년 거의 소실된 것을 이듬해 후손들이 새로 지었다. 돌출부에 누마루가 있고 양쪽 온돌방을 배치했다. 1930년대 건물이지만 재료 마감, 건축 방식 등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잇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