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선조어서각
김해 선조 어서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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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김해 선조 어서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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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宜祖 御書閣 |
주소 | 경상남도 김해시 흥동로 123-18 (흥동)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0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7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김해 선조어서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선조어서각(宜祖御書閣)은 1593년(선조26) 9월에 선조가 의주 행재소(行在所)에서 국문으로 반포했던 교서를 보관하기 위해 1835년에 교서를 받들었던 권탁의 후손이 건립한 건물이다. 원래 한 칸 평면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었으나 허물어져 1989년 4월 현재의 장소로 옮겨서 복원하였다. 권탁을 모시는 현충사 뒤편에 담장을 따로 둘러 보호하고 있다.
선조의 교서에는 왜군에게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적중에서 탈출해 돌아올 것을 권유한 내용이 담겨 있다. 1593년 9월에 교서를 받든 권탁(權卓)은 적진으로 잠입하여 일본으로 끌려가기 직전의 백성 100여명을 구출하는 공을 세웠다.
어서각에서 보관했던 선조국문유서는 최초의 한글 공문서로서 16세기말의 언어를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국어사적 가치가 있다. 현재 김해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문
Seonjoeoseogak Pavilion, Gimhae
Seonjoeoseogak Pavilion was built in 1835 to house a letter written in the Hangeul script in 1593 by King Seonjo (r. 1567-1608) to the people of Korea.
The letter was writte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while the king was escorted to his refuge in Uiju. The letter was addressed to the commoners most of whom could not read Classical Chinese and thus was written in vernacular Korean using the Hangeul script. It contains a message asking the people who had been captured by the Japanese troops to escape and come back. The military official Gwon Tak (1544-1593) who was in command of Gimhaeseong Fortress at the time, penetrated the enemy’s positions with this letter and saved about 100 captured Koreans. The letter was passed down among the descendants of Gwon Tak until a pavilion was built to house it. It was designated as a Treasure in 1988 and is currently kept at the Hangeul Museum of Gimhae(?). The letter is an important example of vernacular Korean of the late 16th century and holds significant historical and linguistic value as the first ever official document written in the Hangeul script.
The original pavilion eventually fell into disrepair and was built anew at its current location in 1989. In front of the pavilion is Hyeonchungsa Shrine venerating Gwon Tak.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인 1593년 선조(재위 1567-1608)가 백성들에게 내린 한글 교서를 보관하기 위해 1835년에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포로가 된 조선인이 많았는데, 선조는 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교서를 반포하였다. 교서에는 일본군의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적중에서 탈출해 돌아올 것을 권유한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김해성을 지키던 무신 권탁(1544-1593)이 이 교서를 가지고 적진에 잠입하였고, 일본으로 끌려가기 직전의 백성 100여 명을 구출해 돌아왔다. 이 교서는 권탁의 후손이 보관하다가 어서각을 세워 보관하였고, 1988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김해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최초로 한글로 쓰인 공문서로서 16세기말의 언어를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국어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원래의 어서각은 시간이 흘러 허물어졌고, 198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어서각 앞에는 권탁을 기리는 사당인 현충사가 있다.
참고자료
- 선조 국문 유서, 한국 기록유산 Encyves,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선조_국문_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