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승일교
철원 승일교 Seungilgyo Bridge, Cheor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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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철원 승일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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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eungilgyo Bridge, Cheorwon |
한자 | 鐵原 承日橋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725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등록문화재 제26호 |
지정(등록)일 | 2002년 5월 31일 |
분류 | 등록문화재/기타/공공용시설/ |
수량/면적 | 높이 35m, 길이120m, 폭 8m |
웹사이트 | "철원 승일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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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남북합작교인 승일교는 일제강점기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이며 구주공전 출신으로 진남포 제련소의 굴뚝을 설계했다는 김명여 교사가 설계하여 시공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정권하인 1948년 8월 동송읍 장흥리 쪽으로부터 철원 및 김화지역 주민들을 노력공작대라는 명목 하에 동원하여 공사를 시작하였고 다리의 절반 정도를 추진한 상태에서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수복 이후 완공까지는 2가지의 내용이 전해져 오는데 첫 번째는 남한에서 약간 다른 특색의 공법으로 나머지 구간 공사를 마무리하고 1958년 12월 3일 준공하면서 “승일교”라 명명하였다는 것으로 다리가 완공되기 전까지 국군에 의해 임시 가교인 목조 다리를 놓아 통행하였고 다리는 완공한 이후 임시 목교는 철거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한 가지는 1952년 미79공병대대 중위로 한국에 복무했던 제임스.N.패터슨씨가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자료에 나온 내용이다. 이 자료에 승일교는 일본인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어 다리의 양쪽입구 15미터 2경간*과 50미터 1경간을 완료하고 50미터 1경간을 남겨둔 채 다리 공사가 중단되었고 이후 미79공병대대가 1952년 4월 3일 상부로부터 아치 다리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받아 1952년 4월 16일 공사를 시작하여 1952년 8월 15일 완공하였다고 나와 있다.
승일교라는 명칭도 두 가지 유래가 전해져 오는데 하나는 다리를 지을 당시 남한과 북한의 통치자인 이승만의 ‘승’ 김일성의 ‘일’을 따와서 지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박승일 장군의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따와서 지었다는 것이다.
1999년 8월 11일 바로 옆 한탄대교를 개설하면서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현재는 인도로 사용되고 있다.
다리의 시작과 완성의 시공법 및 주체가 다르고 아치의 크기 등 교각의 구조체가 외관상으로 구별될 정도이며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의 독특한 상황으로 인해 만들어진 역사적 의의와 아름다운 형태를 갖춘 조형미가 돋보여 2002년 5월 27일 등록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 경간 : 건축물ㆍ구조물ㆍ교량 등에서 지점(지주ㆍ교각)과 지점 사이의 서로 마주 보는 면의 거리
영문
The construction of Seungilgyo Bridge was began by North Korea in 1948 and completed by South Korea in 1958. It is symbolic of the change of hands of Cheorwon’s territory from North Korea, who oversaw the area following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in 1945, to South Korea, who claimed the territory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is bridge was designed by Kim Myeong-yeo, an architect who served as chief of the Civil Engineering Department in the Cheorwon Agricultural Colleg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Construction began in August 1948 by a group of local workers mobilized by the North Korean government from the areas of Cheorwon and Gimhwa. However, due to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the construction stopped when it was only halfway completed. After the war, the other half of the bridge was completed by South Korean workers. It was opened on December 3, 1958 with the name Seungilgyo.
There are two theories about the origin of the bridge’s name. First is that this name is the combination of then leaders of North and South Koreas, Syngman Rhee and Kim Il-sung. The other is that the bridge was named after General Park Seung-il, who was killed in action during the Korean War, to honor his distinguished service.
In 1999, when Hantandaegyo Bridge was completed, this bridge was turned into a pedestrian-only bridge.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bridge, the background of its construction, which involved the efforts of both Koreas and the use of different building techniques and architectural structures, its direct connection with the most turbulent period in modern Korean history, and its unique aesthetic beauty prompted the Korean government to designate it as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o. 26 in 2002.
영문 해설 내용
승일교는 1948년 북한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었고 1958년 남한에 의해 완공되었다. 철원 지역이 1945년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의 영향 아래에 있다가 한국전쟁 때 남한의 영역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이 다리는 일제강점기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이었던 김명여가 설계하였다.
1948년 8월 북한 정권이 철원과 김화 지역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사가 절반 정도 추진된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공사는 중단되었다. 전쟁 이후, 나머지 구간의 공사가 남한에 의해 마무리되었고, 1958년 12월 3일 준공하면서 ‘승일교’라고 명명되었다.
승일교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다리를 지을 당시 남한과 북한의 통치자인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을 조합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박승일 장군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왔다는 것이다.
1999년 한탄대교가 개설되면서 이 다리는 인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승일교는 이 다리가 지니는 역사적인 의의, 남북한이 각각 주도했던 공사의 배경과 시공법의 차이, 한국 근대 격동기와의 연관성, 독특한 조형미 등을 인정받아 2002년 국가등록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참고
- 승일교 명칭 유래에 대한 논란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 출판금지 모면”, 『연합뉴스』, 1995.03.24.
- “함께 세운 이 다리에서 다시 만납시다”, 『국방일보』, 2016.06.24.
- “승일교와 한탄대교”, 네이버 블로그, 201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