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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세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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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11월 16일 (수) 20:26 판 (=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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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세병관
Sebyeonggwan Hall, Tongyeong
통영 세병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통영 세병관
영문명칭 Sebyeonggwan Hall, Tongyeong
한자 統營 洗兵館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세병로 27 (문화동)
지정(등록) 종목 국보 제305호
지정(등록)일 2002년 10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통영 세병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이다.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겼고 이듬해인 1605년에 세병관을 세웠다. 제35대 통제사 김응해가 1646년에 다시 크게 지었으며, 제194대 통제사 채동건이 1872년에 고쳤다.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작집이며 경복궁 경회루‧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 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 면적이 넓은 건물로 손꼽힌다.

건물 외부는 장대석 기단에 민흘림기둥 50개를 세우고, 이익공 양식으로 지붕을 올렸으며, 수수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이다. 건물 내부에는 전체적으로 우물마루를 깔고 연등천장을 올렸다. 안쪽의 중앙 3칸은 한 단을 올려 전패단**을 만들고 천장을 소란 반자***로 꾸미고 3면에 분합문****을 달아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관’은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의미인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이름으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누리길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썼다.


  • 객사(客舍): 고려‧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여 외국 사신이나 다른 곳에서 온 벼슬아치를 대접하고 묵게 하던 숙소. 조선시대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공식행사를 하던 곳.
  • 전패(殿牌): 임금을 상징하는 ‘전(殿)’ 자를 새겨 각 고을의 객사에 세운 나무패.
  • 소란 반자: 반자틀에 소란(小欄)을 대고 반자널을 얹은 반자.
  • 분합문(分閤門): 한옥의 대청 앞쪽에 다는 긴 창살문.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세병관은 1605년에 지어진 건물로, 조선시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수군을 통할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이곳에 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통제사와 장수들이 궁궐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를 행하기도 하였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임진왜란 때인 1593년 경상남도 한산도에 최초로 설립되었고, 이후 거제도로 옮겨졌다가, 1604년에 통영으로 옮겨졌다. 통제영은 1895년에 폐지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최고 통치 기관으로서 존재하였다.

세병관은 1605년 처음 지은 뒤 1646년에 다시 크게 지었고, 1872년에 고쳐 지었다. 팔작지붕을 얹은 단층 건물로, 수수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이다. 장대석 기단에 기둥 50개를 세웠으며,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평면 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내부에는 전체적으로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을 만들지 않고 지붕의 구조와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내부 중앙의 3칸은 전패를 모시는 단을 만들어 두었고 문을 달아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병기를 씻는 곳”이라는 뜻으로, “어찌하면 은하수를 끌어와 갑옷과 병기를 깨끗이 씻고 영원히 사용하지 않도록 할까”라는 시에서 비롯되었다. 이 이름에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누리길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1732-1802)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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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