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필달 신도비
조필달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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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조필달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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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必達 神道碑 |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 112-16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82호 |
지정(등록)일 | 2021년 4월 30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시대 | 조선 17세기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조필달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조필달(1600~1664)은 1624년에 무과에 급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활약했던 인물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 등을 지낸 인물이다.
조필달 신도비는 일반적인 신도비의 위치인 묘소 입구 신도 초입에 위치하여 있으며, 전형적인 신도비의 격식을 모두 구비한 양식이다.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구름문양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고, 비신과 이수가 일체형으로 경계부분에 층급을 두어 연화문을 조각하였으며,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찬자(撰者)는 병자호란 당시 의병에 참여하였으며,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화곡 홍남립(1606∼1679)이고, 서자(書者)는 호남지역의 최고 명필인 송재 송일중(1632∼1717)으로 인물사적·예술적·금석학적 가치가 있어 202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무신 조필달(1600-1664)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새운 비석이다. 조필달은 김제 출신으로 1624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지냈다. 정묘호란 때에는 세자의 피난을 호위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는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할 때 호종하였다.
조필달의 신도비는 조필달의 묘소 앞에 서 있으며, 받침돌,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몸돌과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에 둘러싸인 두 마리의 용이 생동감 있게 새겨져 있고, 머릿돌과 몸돌의 경계 부분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전형적인 신도비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몸돌에 새겨진 비문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에 참여하였으며 문장가로도 이름을 날린 홍남립(1606-1679)이 지었고, 전라도 지역의 최고 명필인 송일중(1632-1717)이 글씨를 썼다.
- 신도비 세운 시기는 확인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