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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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11월 2일 (수) 13:0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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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입석
Menhirs of Indong
인동입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인동입석
영문명칭 Menhirs of Indong
한자 仁同立石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627-4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4호
지정(등록)일 1987년 5월 13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민간신앙/마을신앙
수량/면적 2기(116㎡)
웹사이트 인동입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선돌(입석)은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이다. '괘혜암(掛鞋岩)'이라 새겨진 글자 때문에 일명 '신 걸이 바위'라고도 한다. 조선 선조 17년(1587)에 인동 현감으로 부임한 이등림(李鄧林)이 선정을 베풀고 임기가 끝나 돌아갈 때, 한 계집종이 아전에게서 짚신 한 켤레를 받은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 돌에 걸어두고 떠났는데, 이등림의 이러한 청렴함이 다른 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괘혜암 옆에는 '출포암(出捕岩)'이라 불리는 선돌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대정기념비(大正記念碑)'라 새긴 것을 광복 이후에 지우고 '대한민국건국기념비(大韓民國建國記念碑)'라 다시 새겼다. 이 선돌은 인동에 관아가 설치될 무렵 고을을 이롭게 하고 고을을 넘겨다보는 도둑을 막을 수 있다는 풍수지리적 근거에 따라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선돌들은 선사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을 짐작하게 할 뿐 아니라 조선시대 청백리의 미담이 담긴 기록물로 의미가 있다.

영문

Menhirs of Indong

A menhir, or standing stone, is a prehistoric upright stone monument that was installed individually or as a part of a group, presumably to mark a village boundary or to signify an object of worship. These two menhirs in Indong (a former name of Gumi) feature inscriptions made in the late part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d the mid-20th century.

The larger menhir to the right is inscribed with the name Gwaehyeam, meaning “Rock of Hanging Shoes.” This name refers to a story about Yi Deung-rim (1535-1594), who was appointed as magistrate of Indong in 1584 and proved himself an honest and kind politician. Yi found out near the end of his appointment that a female servant had received a pair of straw shoes from a local clerk. Being very strict about the misuse of public goods, Yi confiscated the shoes and hung them on this menhir, thus setting an example of integrity for other public officials.

The smaller menhir to the left had been inscribed with a Japanese era name (Taisho, 1912-1926)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After Korea’s liberation in 1945, the inscription was removed and replaced with the current inscription, which means “Commemorative Monument for the Found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영문 해설 내용

입석은 선사시대의 돌기둥 유적으로 선돌이라고도 한다. 입석은 단독 또는 입석군으로 세워지며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세워졌다고 여겨진다. 인동(구미의 옛 이름) 입석은 총 2기이고, 조선 후기와 20세기 중반에 새겨진 명문이 있다.

오른쪽의 큰 입석은 앞면에 ‘괘혜암(掛鞋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신발을 걸어두었던 바위’라는 뜻이다. 1584년 인동현감으로 부임한 이등림(1535-1594)이 선정을 베풀고 임기가 끝나 돌아갈 때, 한 계집종이 아전에게서 짚신 한 켤레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등림은 그 신발을 이 돌에 걸어두고 떠났는데, 이러한 청렴함이 다른 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왼쪽의 입석에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일본의 다이쇼 연호를 기념하는 문구를 새겼었는데, 1945년 광복 이후 그 문구를 지우고 ‘대한민국건국기념비(大韓民國建國記念碑)’라 다시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