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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삼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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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ichukova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10월 25일 (화) 10:00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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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삼인대
순창 삼인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순창 삼인대
한자 淳昌 三印臺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산271번지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
지정(등록)일 1973년 6월 23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생활유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순창 삼인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삼인대는 중종 10년(1515)에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린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류옥(柳沃)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삼인이란 명칭은 세 개의 직인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단경왕후 신씨는 폐위된 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종반정 때 피살된 좌의정 신수근의 딸이다. 반정공신 박원종 등은 자신들의 손으로 죽인 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세우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 염려하여 중종에게 신씨를 폐출하게 하였다. 그 후 새로 왕비가 된 장경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고, 관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죽음을 각오하며 폐비 신씨의 복위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들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유배(죄인을 먼 곳으로 보내 그곳에 거주하게 함)에 처해지는 형벌을 받았다.

영조 20년(1744)에 호남과 순창 지역의 유림이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비와 함께 비각을 세우고 삼인대라고 불렀다. 삼인대 비문은 이재가 지었고, 전액(篆額)*은 유척기가, 글씨는 민우수가 썼다.


  • 전액: 전자체(篆字體)로 비석의 윗부분이나, 머릿돌에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

영문

Samindae Pavilion, Sunchang

Samindae Pavilion is a stele and a commemorative pavilion built in 1744 to honor local magistrate of Sunchang Kim Jeong (1468-1521), local magistrate of Damyang Bak Sang (1474-1530), and magistrate of Muan Ryu Ok (1487-1519).

In 1506, the tyrannical ruler King Yeonsangun (r. 1494-1506) was dethroned and King Jungjong (r. 1506-1544) became king. At the same time, King Jungjong's wife, Lady Sin (1487-1557), was the daughter of the second state councilor Sin Su-geun (1450-1506) and Sin Su-geun's younger sister was the queen consort of King Yeonsangun. The leaders of the coup who supported King Jungjong disposed of Sin Su-geun who didn't participate in their plan and, worried that there will be trouble if Sin Su-geun's daughter was made a queen, they expelled Lady Sin from King Jungjong. Also, Lady Sin was expelled only seven days since she entered the royal court. Later that year, King Jungjong was remarried to a new queen, but she passed away after she gave birth to a crown prince in 1515, so Kim Jeong, Bak Sang, and Ryu Ok submitted a petition to reinstate Lady Sin. These three people

영문 해설 내용

삼인대는 순창군수 김정(1468-1521), 담양부사 박상(1474-1530), 무안현감 류옥(1487-1519)을 기리기 위해 1744년에 세운 비와 비각이다.

1506년 폭군 연산군(재위 1494-1506)이 폐위되고 중종(재위 1506-1544)이 왕위에 올랐다. 당시 중종의 부인 신씨(1487-1557)는 좌의정 신수근(1450-1506)의 딸이었고, 신수근의 여동생은 연산군의 비였다. 중종을 지지하던 반정 세력은 자신들의 계획에 참여하지 않은 신수근을 살해하였고, 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세우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 염려하여 중종에게 신씨를 폐출하게 하였다. 그리고 신씨는 입궐한지 불과 7일 만에 폐출 당하였다. 같은 해 중종은 새 왕비를 맞았으나 왕비가 1515년 세자를 낳은 뒤 세상을 떠났고, 김정, 박상, 류옥은 신씨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렸다.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어서, 관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죽음까지도 각오한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유배에 처해지는 형벌을 받았다.

신씨와 신수근은 1739년에 복위되었고, 1744년 순창 지역의 유림이 김정, 박상, 류옥을 추모하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삼인대라는 뜻은 이 세사람이 세 개의 직인을 걸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