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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영 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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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10월 22일 (토) 14:3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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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영 서실
설진영 서실, 두피디아.
대표명칭 설진영 서실
한자 薛鎭永 書室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25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96호
지정(등록)일 1998년 1월 9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설진영 서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남파 설진영(1869~1940)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설진영은 1895년부터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체결되자 민족사상을 갖춘 제자를 기르기 위해 서실을 열고 학문 연구와 애국지사 배출에 온 힘을 바쳤다.

그 후 1940년 일본이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는 창씨개명령을 내리자,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성(姓)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서실 앞 우물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서실은 학자 설진영(1869-1940)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910년에 세웠다.

설진영은 1895년부터 의병장 기우만(1846-1916)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체결되자 서실을 열고 학문 연구와 애국지사 배출에 온 힘을 바쳤다. 1940년 일본이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한국인들의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성씨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서실 앞 우물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서실은 왼쪽의 온돌방과 오른쪽의 대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과 대청 사이의 문은 들어 올려 필요시 공간을 넓게 쓸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