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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삼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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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10월 22일 (토) 11:32 판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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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삼인대
순창 삼인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순창 삼인대
한자 淳昌 三印臺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산271번지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
지정(등록)일 1973년 6월 23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생활유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순창 삼인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삼인대는 중종 10년(1515)에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린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류옥(柳沃)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삼인이란 명칭은 세 개의 직인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단경왕후 신씨는 폐위된 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종반정 때 피살된 좌의정 신수근의 딸이다. 반정공신 박원종 등은 자신들의 손으로 죽인 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세우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 염려하여 중종에게 신씨를 폐출하게 하였다. 그 후 새로 왕비가 된 장경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고, 관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죽음을 각오하며 폐비 신씨의 복위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들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유배(죄인을 먼 곳으로 보내 그곳에 거주하게 함)에 처해지는 형벌을 받았다.

영조 20년(1744)에 호남과 순창 지역의 유림이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비와 함께 비각을 세우고 삼인대라고 불렀다. 삼인대 비문은 이재가 지었고, 전액(篆額)*은 유척기가, 글씨는 민우수가 썼다.


  • 전액: 전자체(篆字體)로 비석의 윗부분이나, 머릿돌에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