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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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10월 12일 (수) 20:07 판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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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척화비
Anti-appeasement Stele
대원군 척화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대원군 척화비
영문명칭 Anti-appeasement Stele
한자 大院君 斥和碑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오봉리 141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3호
지정(등록)일 1984년 5월 17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대원군 척화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대원군 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이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이후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배척하고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주요 도로변에 세운 비석이다.

넓적한 자연 암석 위에 비몸을 꽂아놓은 형태인데,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다(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라고 새겨져 있다.

홍성군 구항면 척화비는 아산군 신창면 척화비와 예산군 대흥면 척화비 등과 함께 충남에 남아 있는 3기의 척화비 중 하나로, 조선 후기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군사적·외교적 상황과 대원군의 쇄국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문

Anti-appeasement Stele

This is one of the many anti-appeasement steles set up across the country in 1871.

Following devastating armed conflicts on Korean soil with France in 1866 and the United States in 1871, Heungseon Daewongun (1820-1898), the prince regent and de facto ruler during the early period of King Gojong’s reign (r. 1863-1907), ordered these steles be erected to warn people against opening Korea to Western powers. Each stele bears twelve Chinese characters, reading, “The Western barbarians have invaded. To not fight is to advocate peace. To advocate peace is to sell out the country.” Next to this admonition are small characters which read, “Let this be a warning to our offspring for the next ten-thousand years.” After King Gojong took control of state affairs, Korea opened itself to foreign exchange, and most such steles were taken down. Over 20 of them have survived to this day and were designated as cultural heritages.

This stele is one of the three anti-appeasement steles remaining in Chungcheongnam-do Province, along with those in Asan and Yesan.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1871년 전국에 세워졌던 여러 척화비 중 하나이다.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친부이자 당시 실권자였던 흥선대원군(1820-1898)은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등을 치른 뒤,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고자 전국에 척화비를 세울 것을 명하였다. 척화비에는 ‘서양의 오랑캐가 침입해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열두 글자를 크게 새겼고, 그 옆에 ‘우리들 만대 자손에게 경고한다’는 내용이 작은 글자로 새겨져 있다. 이러한 척화비는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된 후, 조선이 문호를 열게 되면서 대부분 철거되었다.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20여 기의 척화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홍성의 척화비는 아산과 예산의 척화비와 함께 충남에 남아 있는 3기의 척화비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