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루(강화 외성)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10월 6일 (목) 12:45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진해루 鎭海樓
Goto.png 종합안내판: 강화 외성



해설문

국문

강화외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도록 강화도 동쪽 해안을 따라 쌓은 성이다. 조선 시대에도 강화도는 국왕의 피난처이자 국방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강화외성을 개축하고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숙종 때는 병자호란(1636)으로 허물어진 성을 돌로 고쳐 쌓았고, 영조 때는 일부 구간을 벽돌로 다시 쌓았다.

문루는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을 의미하는데 강화외성에는 조해루, 복파루, 진해루, 참경루, 공조루, 안해루 등 6개의 문루가 있다. 이 중 진해루는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도와 내륙을 잇는 주된 관문이었다.

주춧돌만 남은 진해루터를 발굴하고 조사하여 2020년에 성곽의 일부와 함께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진해루는 강화외성에 지어졌던 6개의 문루 중 하나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진해루는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도와 경기도 김포 사이를 잇는 주된 관문이었다. 원래의 진해루는 19세기 말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2005-2006년 발굴조사를 통해 진해루의 터가 확인되었다. 지금의 진해루와 양옆의 성벽은 2020년에 지은 것이다.

강화외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도록 강화도 동쪽 해안을 따라 쌓은 성이다. 조선시대에도 강화도는 유사시 왕이 피난하는 곳이자 국방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강화외성을 개축하고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병자호란으로 성벽 일부가 허물어져 돌로 다시 쌓았고, 1743년에는 일부 구간을 벽돌로 다시 쌓았다.

갤러리

주석

  1. "이름없는 강화 제1관문 ‘진해루’, 강화뉴스, 2022.04.15.
  2. "이름없는 강화 제1관문 ‘진해루’, 강화뉴스, 2022.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