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감추사
동해 감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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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동해 감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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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海 甘湫寺 |
해설문
국문
감추사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설화에 따르면 공주가 백제 무왕과 결혼한 뒤 백풍병이라는 병에 걸려 낫지 않자, 익산 사자사에서 지명법사의 설법을 듣고 그의 권유를 통해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공주는 이곳 석굴에 불상을 모시고 기도하였으며, 병이 완치되자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절을 지어 ‘석실암’이라고 부르니, 이것이 감추사의 창건설화이다. 공주는 노년이 되어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동해를 바라보다 죽으니 그녀의 묘 역시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폐사되어 이름만 전해오던 이곳에 1902년 다시 절을 세우고 ‘신건암’ 또는 ‘대은사 분암’이라 하였는데, 1959년 해일이 덮쳐 석실과 불상이 모두 유실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5년 감운법사가 이곳에 와 사찰을 중건해 감추사라 하였다. 감추사에 창건 당시의 자료는 찾을 수 없으나 선화 공주가 불상을 모셔두고 기도했다는 석굴의 흔적이 남아있다.
감추사는 바다에 인접한 기암절벽 옆에 위치하여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이곳에서 흐르는 약수를 마시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 동해시의 명소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감추사는 원래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석실암이 있던 곳이다.
설화에 따르면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과 결혼한 뒤 병에 걸려 낫지 않자, 익산 사자사에서 한 법사의 설법을 듣고 그의 권유를 통해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공주는 이곳 석굴에 불상을 모시고 기도하였으며, 병이 완치되자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절을 지었다. 공주는 노년이 되어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동해를 바라보다 죽으니 그녀의 묘 역시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석실암은 오랫동안 폐사되어 이름만 전해오고 있었다. 1902년 이곳에 다시 절이 세워졌으나, 1959년 해일이 덮쳐 석실과 불상이 모두 유실되었다고 한다. 1965년 감운법사가 이곳에 와 사찰을 중건하고 감추사라 하였다.
감추사는 바다에 인접한 기암절벽 옆에 위치하여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이곳에서 흐르는 약수를 마시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 동해시의 명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