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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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묘 Tomb of Yi Seung-h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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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훈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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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이승훈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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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Yi Seung-hun |
한자 | 李承薰 墓 |
주소 |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산 132-1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63호 |
지정(등록)일 | 2011년 12월 28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8,430㎡ |
웹사이트 | "이승훈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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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한국 가톨릭 교회의 최초 영세자인 이승훈(1756-1801)의 묘이다. 그는 25세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던 중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가게 된다. 이곳에서 선교사들로부터 교리를 배운 후 ‘조선 교회의 주춧돌이 되라.’는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게 된다. 정조 9년(1785) 서울 명동의 김범우 집을 교회로 삼아 한국 최초의 천주교회를 창설하였다.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 후, 천주교 박해시기에 몇 차례의 배교(背敎)와 복교(復敎)의 과정을 거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정약종 등 여러 신자와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후 이곳에 묻혔다. 그의 유해 이장을 위해 1981년 무덤을 열었으나 거의 진토가 되어 있었으며, 수습할 수 있는 유골은 경기도 광주군 천진암 성지로 옮겨졌다. 이곳은 이승훈이 180년 넘게 묻혀 진토(塵土)가 되어있는 진묘(眞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