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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 북천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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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 북천교비
평해 북천교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평해 북천교비
한자 平海 北川橋碑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로 59-1(구산리 366-1)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1호
지정(등록)일 2004년 10월 14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평해 북천교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평해 북천교비는 조선 선조 36년(1603)에 세운 비석으로, 기성면 구산리와 평해읍 월송리 사이를 흐르는 사천(沙川) 인근에 있다.

비석의 글씨는 해서체(楷書體)로 새겨져 있으나, 간혹 행서체(行書體)나 초서체(草書體)로 새겨진 부분도 있다.

비석에 적힌 글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쪽에는 북천교를 세우게 된 경위와 연대가 적혀 있다. 조선 후기 당시 사천은 바닷물과 맞닿아 있어서 항상 물이 흘러넘쳐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불편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평해군수 조인징의 허락으로 돌다리를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 다음으로는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 100여 명의 이름이 비석의 앞뒤로 적혀 있다. 그중에는 직접 공사를 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공사를 위해 돈이나 음식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도 있다. 이 이름들을 살펴보면 ‘韓五十同(한오십동: 나이 쉰쯤 된 동이)’, ‘金㗟石(김줏석: 주운 돌이)’, ‘李㗟沙里(이줏사리: 주운 사리)’, ‘金亐音石(김무음석: 말 못하는 돌이)’, ‘黃唜丁(황말정: 막내 정이)’, ‘林莻同(임늦동: 늦게 낳은 동이)’, ‘鄭莫同(정막동: 그만 낳을 동이)’, ‘奉奉(봉봉)’ 등 막 부르던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적은 것이 많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사람들의 신분과 사회 구조를 잘 보여준다. 특히 수많은 사람 이름을 당시 발음대로 적어 두었다는 점에서 지역 사투리와 언어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