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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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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농성
한자 農城
주소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산41-5
지정(등록) 종목 시도기념물 제74호
지정(등록)일 1981년 7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시대미상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축성 연대 불명의 옛 성터로 높이 4m 안팎의 축대가 둘레 약 300m에 이르는 타원형의 터전을 둘러싸고 있는데, 축대는 흙을 얇은 층 모양으로 다져서 쌓아올리는 판축(版築) 방법으로 축조되어 있다.

삼국시대에 도적을 막기 위하여 쌓았다는 설, 신라 말기 중국에서 건너온 임(林)씨의 시조가 쌓았다는 설, 고려시대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여 쌓았다는 설, 등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소규모의 흙으로 쌓은 성은 대부분 초기 국가의 형성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되므로, 이 성이 위치한 지형으로 볼 때는 이미 이 지역에 정착하고 있던 세력집단들이 그들의 근거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보인다.



  • 판축(版築) : 판자를 양쪽에 대고 그 사이에 흙을 넣어서 단단하게 다져 담이나 성벽 등을 쌓는 일, 곧 토목공사를 말함.

국문 수정안

농성은 안성천과 아산만이 합쳐지는 지역에 형성된 평야지대에 있는 성이다.

이 성은 흙으로 쌓은 성이다. 성의 형태는 타원형으로, 전체 둘레는 약 300m에 이르고 성벽의 높이는 5~8m이다. 동쪽과 서쪽에는 문터가 남아있다. 성이 쌓여진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성을 쌓은 이유로 삼국시대에 도적을 막기 위하여 쌓았다는 설, 신라 말기 중국에서 건너온 평택임씨의 시조인 임팔급이 축조하여 생활 근거지로 삼았다는 설, 고려시대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는 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 전한다. 성 바로 옆에는 겨울철에는 따뜻한 물이, 여름철에는 찬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