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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읍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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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성읍객사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평택시史, 평택시.
대표명칭 팽성읍객사
한자 彭城邑客舍
주소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동서촌로 101-3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37호
지정(등록)일 1989년 6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팽성읍객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팽성읍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관리들이 한달에 두번 궁궐을 바라보며 행하는 예(절)을 하던 곳이며, 다른 지방에서 온 관리들이 머물던 숙소로 사용되었다.

조선 성종 19년(1488)에 크게 지었으며, 그 후로 2번의 수리를 거쳤다. 일제시대에는 양조장으로 바뀌었다가 주택으로 사용되었는데, 1994년 해체·수리하면서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현재는 대문간채와 본채가 남아 있으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객사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 전패(殿牌) : 조선시대 지방관청의 객사(客舍)에 왕의 초상을 대신하여 봉안하던 목패(木牌).

국문 수정안

객사는 고을에 설치했던 관아로, 고을 수령이 망궐례를 행하거나 관리나 사신이 숙소로 사용했던 시설이다.

팽성읍객사는 조선시대 팽성현의 객사이다. 망궐례가 행해지는 건물인 정청을 중심으로 숙소로 사용되는 동헌과 서헌이 양 옆에 있다. 정청은 동헌과 서헌보다 높게 지어졌으며 지붕 위 용마루의 양 끝에는 용 모양의 장식 기와가 올려져 있다. 이는 관아로서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으로, 맞은 편 대문의 지붕 용마루에도 놓여져 있다.

이 객사는 성종 19년(1488)에 지어졌으며, 그 후로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쳤다. 일제강점기에는 양조장으로 바뀌었다가 주택으로 사용되었으며, 1994년 복원되었다.

  • 망궐례: 직접 궁궐에 나아가서 왕을 뵙지 못할 때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고 행하는 예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