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송석재사
안동 송석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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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송석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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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 松石齋舍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226-1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45호 |
지정(등록)일 | 2012년 10월 2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4동 |
웹사이트 | 안동 송석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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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송석재사는 김철(金澈)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김철은 의성 김씨 중 안동에 처음으로 정착한 김만근의 4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안동 지역을 지켜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송석재사를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원래 임하면 사의리의 깊은 골짜기에 있었다고 한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7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재사는 정침*을 중심으로 양옆에 날개채를 두고 앞에 누각을 세워 ‘口’ 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침에는 왼쪽부터 부엌, 온돌방, 마루, 온돌방이 있고, 양쪽 날개채에도 각각 온돌방과 부엌이 있다. 왼쪽 날개채에 출입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에는 나무로 된 경첩이 달려 있다. 2층으로 된 누각 앞면에는 판벽을 세우고 아래층에 미닫이로 된 판문을 설치하여 안마당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모습들은 비교적 오래된 건축 기법을 보여 주는 특징들이다.
- 정침(正寢): 건물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집 또는 방
영문
Songseokjaesa Ritual House, Andong
Songseokjaesa Ritual House was built for the preparation of veneration rituals and the maintenance of the tomb of Kim Cheol (1569-1616). Kim Cheol was the fourth-generation descendant of Kim Man-geun (1446-1500), the first person from the Uiseong Kim Clan to settle in Andong.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Kim also mobilized a local civilian army and protected the Andong area from the enemy.
While it remains unknown when exactly the ritual house was established, it is said that it was originally located in the deep valley of Saui-ri Village in Imha-myeon Township. The ritual house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87 due to the construction of Imha Dam.
The house consists of a main quarters, two wing quarters, and a pavilion, which together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The main quarters comprises a kitchen, an underfloor-heated room, a wooden-floored hall, and another underfloor-heated room. Each of the wing quarters has an underfloor-heated room and a kitchen. Some elements of the ritual house demonstrate relatively old construction techniques, such as the door with wooden hinges in the left wing quarters or the wooden walls installed along front of the pavilion and the sliding doors on its bottom floor.
영문 해설 내용
송석재사는 김철(1569-1616)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워졌다. 김철은 의성김씨 중 안동에 처음으로 정착한 김만근(1446-1500)의 4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안동 지역을 지켜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송석재사를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원래 임하면 사의리의 깊은 골짜기에 있었다고 한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7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재사는 정침을 중심으로 양옆에 날개채를 두고 맨 앞에 누각을 세워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침에는 왼쪽부터 부엌, 온돌방, 마루, 온돌방이 있고, 양쪽 날개채에도 각각 온돌방과 부엌이 있다. 왼쪽 날개채에는 출입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에는 나무로 된 경첩이 달려 있다. 누각 앞면에는 판벽을 세우고 아래층에 미닫이로 된 판문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비교적 오래된 건축 기법을 보여준다.
참고자료
- 송석재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20 -> 정침을 중심으로 좌·우익사를 두고 앞면에는 5칸의 누각을 설치하여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침은 왼쪽으로부터 4칸 정지, 1칸 온돌방, 1칸 마루, 1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왼쪽 익사에는 온돌방 2칸과 정지 1칸이, 오른쪽 익사에는 온돌방 1칸과 정지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의 3칸 온돌방 중 가운데 1칸은 원래 마루였다. 5량가로 종량 위의 대공을 동자대공으로 간소하게 처리하였다. 누마루의 기둥 위에는 보아지를 만들어 대들보를 보강하였다. 가구는 3량가이고 종량 위는 제형판대공을 사용하였으며, 마루도리와 처마도리는 모두 원형의 굴도리를 채택하여 비록 간략한 가구이지만 고급스러운 방식을 채택하였다. 정침 정지에서 서쪽 외부로 통하는 판문에는 나무로 돌쩌귀를 만들어 문을 개폐하게 한 것이 특이하다. 앞면 누마루의 2짝 판문은 미닫이로 처리되어 있어 일반적으로 여닫이로 된 개폐 방법과는 다르다. 앞면 누마루 아래층에는 왼편에 1칸 규모의 광을 두었고, 나머지는 개방시켰으며, 광 앞에 달린 사다리를 이용해서 상층 우물마루로 된 누마루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이 누마루를 통해 내부로 출입하게 되어 있다.
- 안동 송석재사(松石齋舍)를 가보다~, 엉뚱나미의 심심한 동네, 네이버 블로그, 2011.03.10. https://blog.naver.com/snk8513/10104764856 -> 내부 사진 비교적 상세함(2011년 사진이므로 현재 상태는 알 수 없음)
- 임하구곡 이야기, 학산거사 안동문화 사랑, 네이버 카페, 2021.06.11. https://cafe.naver.com/hakga/284 -> ‘송석재사’ ‘송석’과 임하구곡의 위치 관련 글
- 김덕현, 「임하구곡의 은거문화」, 『안동학연구』 제16집, 한국국학진흥원, 2017.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609936# -> 임하구곡은 실체가 분명하고 유학자들의 유람도 많았지만, 구곡시가 없었으므로 구곡의 장소명은 시대와 유람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인식되었다. / 송석은 도연폭포를 빠져나온 반변천 물줄기가 송석산 줄기를 휘감아 돌아나가는 좁은 골짜기이다. 송석산에는 김진의 손자 김철의 송석정이 있었고 그의 산소와 재사도 있다. 송석은 양면에 가파른 산지가 솟아서 강폭이 좁고 경사면이 가파를 뿐 아니라, 풍화에 매우 강한 규장암(felstone)이 분포하고 있다. 이 암석의 특성으로 강바닥에 울퉁불퉁한 기반암이 드러나 보이고 강물에 마식된 포트 홀(돌개구멍)과 같은 기이한 경관이 전개된다. 이처럼 강바닥의 바위 때문에 배가 더 이상 운행할 수 없으므로 배를 묶어둔다는 선창船倉으로 불렸는데, 나중에 신선이 노니는 곳을 뜻하는 선창仙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제6곡 송석松石(船倉) : 김진의 장손 김철의 송석정이 있었다. 이 부근 강을 선창船倉혹은 선창仙倉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