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서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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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서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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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산청 서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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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淸 西溪書院 |
주소 |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지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9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7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산청 서계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조선 시대 서원은 지방 교육의 상징적인 장소로, 학문을 연구하고 선현(先賢)들의 제사를 지내며 각 지방 고급 인재들이 수시로 출입하고 교류를 하던 장소이다.
산청 서계서원은 조선시대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덕계 오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조선 선조 39년(1606)에 세웠으며, 숙종 3년(1677)에 ‘서계’라는 현판*을 받았다. 고종 5년(1868)에 서원훼철령**으로 사라졌다가 1921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오간, 오장, 박문영 등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서계서원은 앞쪽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모임을 가지던 강당과 생활공간인 동·서재가 있고, 뒤쪽으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사당을 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룬다.
서원의 출입문인 입덕루를 지나면 교육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강당과 학생들이 숙소로 지내던 앞면 2칸 규모의 동재와 서재가 있다. 강당의 오른쪽에는 부속강당인 덕천재와 「오건 덕계문집 목판, 오장 사호집 목판, 오한 수오당문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이 위치한다.
강당 뒤로는 오건을 중심으로 오장, 오간, 박문영 등의 위패***를 모신 앞면 3칸 규모의 사당 창덕사가 있다. 창덕사는 앞쪽에 위치한 강당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지형의 높이 차를 이용하여 강당과 사당 공간의 위계와 영역을 구분하였다.
- 현판(懸板) :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나무 판.
- 서원훼철령(書院毁撤令) : 고종 1년(1864) ~ 고종 8년(1871)에 걸쳐 서원의 폐단을 막기 위하여 전국에 47개의 서원만 남기고 대부분의 서원을 없앤 일.
- 위패(位牌) : 단, 묘, 원, 절 등에 모시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