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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사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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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rssa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7월 8일 (월) 17:22 판 (국문 수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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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사비각
"경기도지정 문화재자료", 평택시史, 평택시.
대표명칭 홍학사비각
한자 洪學士碑閣
주소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본정리 322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5호
지정(등록)일 1983년 9월 19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홍학사 비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인조 14년(1636) 때 삼학사(三學士) 중 한 사람인 홍익한(1586∼1637) 선생의 비를 보호하고 있는 건물이다. 비각은 1964년 건립되었고, 1982년 지금 있는 곳으로 옮겨 다시 세웠는데 포의(褒義) 라고도 한다.

홍익한 선생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화의를 반대하는 척화론을 펼쳤으며, 이로 인해 청나라로 끌려가 처형당하였다. 이후 영의정으로 추증됐고 충정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 삼학사(三學士) :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淸)나라와 화의를 반대하고 결사 항전을 주장하다가 인조가 항복한 뒤 중국 선양으로 끌려가 참형당한 홍익한·윤집·오달제 등 세 명의 학사(學士)
  • 포의(褒義) : 의를 기린다.

국문 수정안

이 비각은 홍익한의 신도비와 묘비, 아들 홍수원의 효자비와 어머니 한산이씨의 열녀비를 보호하고 있는 건물이다. 비각에는 포의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포의는 의를 기린다는 뜻이다.

홍학사는 조선 중기 삼학사 중 한 사람인 홍익한으로, 삼학사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 화의를 반대한 윤집, 오달제, 홍익한을 가리킨다. 홍익한은 인조가 항복한 뒤 청나라로 끌려가 처형당했으며, 이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충정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 비각은 1964년 본정리 삼거리 부근에 처음 건립되었고 198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비각의 뒤에는 홍익한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홍학사는 조선 중기 삼학사 중 한 사람인 홍익한으로, 홍학사비각은 홍익한의 신도비와 묘비, 아들 홍수원의 효자비와 어머니 한산이씨의 열녀비를 보호하고 있다. 비각에는 포의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포의는 의를 기린다는 뜻이다.

삼학사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와 화의를 반대한 윤집, 오달제, 홍익한을 가리킨다. 홍익한은 인조가 항복한 뒤 청나라로 끌려가 처형당했으며, 이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충정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 비각은 1964년 본정리 삼거리 부근에 처음 건립되었고 198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비각의 뒤에는 홍익한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영문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