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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시행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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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rssa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7월 8일 (월) 17:10 판 (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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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시행기념비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평택시史, 평택시.
대표명칭 대동법 시행기념비
한자 大同法 施行記念碑
주소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140-1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0호
지정(등록)일 1973년 7월 10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대동법 시행기념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대동법은 조선시대에 공물(貢物: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제도이다. 대동법 이전에는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공물을 바치게 하였는데, 생산에 차질이 생기거나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반드시 공물을 특산물로 바쳐야만 했다. 공물의 이런 폐단을 이용한 관리나 상인이 백성을 대신하여 공물로 나라에 바치고 그 대가를 몇배씩 가중하여 백성에게 받아내는 방납(防納)으로 인하여 백성의 부담이 한층 가중되었다.

대동법은 1608년(광해군 즉위년)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이후 100여년 동안 걸쳐 확대 실시되었다. 이후 김육은 1658년에 사망하고 그 이후 1659년 호서지방 주민이 설치 한 비이다

이 기념비는 영의정(領議政) 김육(金堉)이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도록 상소하여 실시함으로써 충청도 백성들이 한양서 충청도로 가는 첫관문인 길목에 세원 둔 것으로, 현 위치에서 남동쪽 약50m지점에 세웠던 것을 1970년 현 위치로 이전하여 보존관리하고 있다.

국문 수정안

이 비는 대동법 시행에 대한 김육의 공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대동법은 공납을 특산물 대신에 쌀로 납부하는 제도로, 선조 41년(1608)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이후 100여년 동안 걸쳐 확대 실시되었다. 충청도에는 효종2년(1651) 충청감사로 있던 김육의 노력으로 대동법이 실시되었다. 이 비는 효종10년(1659) 호서지방 주민이 건립한 것으로,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세워졌다.

비문은 이민구가 짓고, 오준이 글씨를 썼다. 귀부, 비신, 이수를 모두 갖추고 있다. 원래는 이곳에서 5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970년대에 옮겨 놓았다.



조선시대 조세 제도 중 하나인 공납은 각 지방의 특산물을 중앙 정부에 바치는 것으로, 백성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세금이었다. 대동법은 공납을 특산물 대신에 쌀로 납부하는 제도로, 선조 41년(1608)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효종 2년(1651) 충청감사로 있던 김육의 노력으로 충청도에 대동법이 실시되었다. 이 비는 대동법 시행에 대한 김육의 공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세워졌다.

이 비는 효종 10년(1659) 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이민구가 짓고, 오준이 글씨를 썼다. 귀부, 비신, 이수를 모두 갖추고 있다. 원래는 이곳에서 5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970년대에 옮겨 놓았다.

영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