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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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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7월 23일 (토) 17:55 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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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송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송정
한자 松亭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구수리 174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호
지정(등록)일 1985년 8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송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송정은 안동 출신의 학자 김시온(金是榲)을 추모하기 위해 손자 김태중(金泰重)이 숙종 5년(1679)에 지은 정자이다. 송정은 원래 도연폭포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있었다. 1949년 화재로 일부가 불에 탔으나 1959년에 고쳐 지었으며,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김시온은 의성 김씨 중 안동에 처음으로 정착한 김만근의 5대손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높았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힘썼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와룡산 도연폭포 근처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 정자는 왼쪽의 마루방과 오른쪽의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자 왼쪽에는 김시온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숭정처사 유허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가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송정은 안동 출신의 학자 김시온(1598-1669)을 추모하기 위해 손자 김태중(1649~1711)이 1679년에 지은 정자이다.

김시온은 의성김씨 중 안동에 처음으로 정착한 김만근(1446-1500)의 5대손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높았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힘썼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와룡산 도연폭포 근처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송정은 원래 도연폭포에서 200여 m 떨어진 곳에 있었다. 1949년 화재로 일부가 불에 타 1959년에 고쳐 지었으며,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왼쪽의 마루방과 오른쪽의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자 왼쪽에는 김시온을 기리기 위해 18세기에 세운 비석(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이 있다.

참고자료

  • 송정,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21 -> 김시온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이승(以承), 호는 도연(陶淵), 표은(瓢隱)이다. 큰아버지인 사성 김극일(金克一)에게 입양되었다.(->오류! 김시온의 아버지 김철이 김극일의 양자임.) 원래 송정이 있던 곳은 정자에서 북쪽으로 200m 전방에 도연폭포가 있었고, 1㎞ 후방에 와룡산이 누워 있었다. 송정 정면 강 가운데에는 기암으로 이루어진 섬산이 절경을 이루었다. 송정 좌측 뒤쪽에는 김시온의 비각이 있었고, 오른쪽 3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인 와룡초당이 있었다. 이후 길안면 용계동에 있던 건물은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수몰 지구에 포함됨에 따라 송정과 비각만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지금의 건물은 1949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1959년에 중건한 것이다. 막돌로 약 60㎝ 정도 높게 기단을 쌓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6칸 중 4칸을 대청으로 사용하였고, 나머지 2칸에 온돌방을 들였는데, 대청은 외부와 접하는 3면에 여닫이문을 달아 마루방의 기능을 갖도록 하였다.
  • 김시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672
  • 김시온,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1297
  • 안동 송정과 숭정처사 유허비, 현스바비큐아카데미, 네이버 블로그, 2021.10.25. https://blog.naver.com/ejhyun20/222547226294 -> 송정에 직접 기거하고 계신 어르신이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2021년 포스팅) / 상세 사진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