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고택
미산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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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미산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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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味山故宅 |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큰맛질길 105 (대제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7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8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4동 |
웹사이트 | 미산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미산고택은 함양박씨 예천 입향조인 정랑 박종린(正郎 朴從鱗)의 후손 박세주(朴世柱)가 지은 집이다. 조선 효종 원년(1650)에 금당곡에서 이곳 대제마을로 이주하면서 처음 지었다가, 그의 5대손인 미산 박득녕(味山 朴得寧)이 순조 25년(1825)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건물은 서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중문채, 사랑채, 안채, 곳간 4개 동의 건물이 튼 ㅁ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에 중문채,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담장 안에 안채가 있고, 뒤쪽으로 곳간이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대청 2칸을 중심으로 ㄷ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과 오른쪽 측면에는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돌려 누각 모습을 하고 있다.
미산고택은 함양박씨 일가에서 6대에 걸쳐 1834년부터 1950년까지 117년간을 기록한 한문 초서* 일기인 『저상일월(渚上日月)』이 쓰여진 장소이다. 사랑채 마루 위의 ‘미산재(味山齋)’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박득녕의 호를 따서 써 준 것으로 전해온다.
- 초서(草書): 서체 가운데 필획을 가장 흘려 쓰는 것으로 획의 생략과 연결이 심함.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미산고택은 함양박씨 중 예천에 처음으로 정착한 박종린(1496-1553)의 후손 박세주가 1650년 금당마을에서 대제마을로 이주하면서 처음 지었다. 이후 박세주의 5대손인 박득녕(1808-1886, 호: 미산)이 1825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미산고택은 서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문채, 사랑채, 안채, 곳간이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고택 앞쪽에는 왼쪽에 문채가 있고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과 오른쪽 측면에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둘렀다. 사랑채에 걸린 ‘미산재’ 현판은 흥선대원군(1820-1898)이 박득녕의 호를 따서 써 준 것으로 전해진다. 안채는 맞배지붕을 얹은 ㄷ자형 건물로,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과 부엌을 각각 두었다. 곳간은 안채 뒤쪽에 있다.
미산고택에 살던 함양박씨 일가는 1834년부터 1950년까지 6대에 걸쳐 한문 일기인 『저상일월(渚上日月)』을 쓰기도 하였다. 『저상일월』은 문중에서 작성된 다른 책들과 함께 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자료
- 저상일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9097
-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11008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