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양봉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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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봉저정
Yongyangbongjeojeong Pavilion
노들강을 건너가 쉬던 행궁, 용양봉저정, 『서울·경기·인천 문화유산 이야기여행』, 문화재청, 2013, 92쪽.
대표명칭 용양봉저정
영문명칭 Yongyangbongjeojeong Pavilion
한자 龍驤鳳䎝亭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32길 14-5 (본동)
지정(등록) 종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
지정(등록)일 1972년 5월 2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건물 1棟, 토지 162.6㎡
웹사이트 용양봉저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용양봉저정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갈 때 배다리*로 한강을 건넌 후 쉬어 가던 노량행궁의 중심 건물이다. 왕이 점심을 들었다하여 주정소(晝停所)**라고도 하였다. 『홍재전서』14권 「용양봉저정기」의 기록에 따르면, 본래 이곳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이 소유한 망해정(望海亭)이라는 정자였으나 정조 13년(1789)에 구입하였다고 한다. 정조 17년(1793)에 정조는 이곳에서 주위를 살펴보고,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고 봉황이 나는 것 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하다.”라며 ‘용양봉저정’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정조 이후에도 많은 왕이 노량행궁을 이용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용양봉온천’이라는 유락 시설로 쓰일 정도로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에도 도로 확장 등으로 주변 대부분이 사라지고 지금은 용양봉저정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화성능행도병』의 「한강주교환어도」와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주교도」를 통해 그 당시의 용양봉저정과 배다리를 관장한 주교사 등 노량행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용양봉저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마루와 온돌방으로 꾸몄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온돌방은 사라지고 지금은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만 남아 있다.


  • 배다리: 교각을 세우지 않고 널판을 걸쳐 놓은 나무다리.
  • 주정소: 조선 시대에 임금이 거둥하다가 머물러 낮수라를 들던 곳.

영문

Yongyangbongjeojeong Pavilion

Yongyangbongjeojeong Pavilion, located on the southern bank of the Hangang River, was built to be used as a resting place by King Jeongjo (r. 1776-1800) after crossing the river during his royal procession to the tomb of his father Prince Sado (1735-1762).

The name Yongyangbongjeojeong, meaning “Pavilion of the Upright Dragon and Soaring Phoenix,” was bestowed by King Jeongjo himself in 1793. As he stood at the pavilion and looked north across the river, the king is said to have remarked that “the steep mountains and the winding river resemble an upright dragon and a soaring phoenix, symbolizing the foundation of a prosperous country.”

There originally stood a pavilion belonging to the descendants of the chief state councilor Yi Yang-won (1526-1592) on this site. However, King Jeongjo purchased the land in 1789 to build this pavilion. The pavilion was part of a larger complex known as Noryanghaenggung Temporary Palace, which consisted of two to three additional buildings, including a main gate. This complex, including the pavilion, can be seen in the Folding Screen of the Royal Parade to Hwaseong Fortress and the Royal Protocols of the Procession to the Royal Tomb in 1795. This temporary palace was also used by several of King Jeongjo’s successors. However, it underwent significant damag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when it was repurposed as a hot spring facility. In the following years, most of the complex was demolished due to road construction, and only the pavilion remains.

The pavilion features a hip-and-gable roof and originally would have consisted of a wooden-floored hall and underfloor-heated rooms. During the colonial period, however, the building was remodeled into its current layout, which consists of one large wooden-floored hall.

영문 해설 내용

한강 남쪽 기슭에 위치한 용양봉저정은 정조(재위 1776-1800)가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의 묘소로 행차할 때 한강을 건넌 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용양봉저정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1793년 직접 지은 것으로 “용이 머리를 들고 봉황이 날아오르는 정자”라는 뜻이다. 정조는 이곳에서 주위를 살펴보고,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고 봉황이 나는 것 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하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원래 이곳에는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1526-1592) 문중에서 소유한 정자가 있었는데, 정조가 1789년에 이 땅을 구입한 뒤 이 정자를 지었다. 원래는 정자 외에도 정문 등 2~3채의 건물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노량행궁이라고도 불렸다. 1795년에 있었던 정조의 화성 행차를 그린 『화성능행도병』과 당시 행사의 전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 용양봉저정을 비롯한 당시 노량행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노량행궁은 정조 이후에도 여러 왕들이 이용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온천 시설로 쓰이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에도 도로 확장 등으로 주변 대부분이 사라지고 지금은 용양봉저정만이 남아 있다.

용양봉저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내부는 원래 마루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온돌방은 사라지고 지금은 마루만 남아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