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당(부 고산숙)
도산서당(부 고산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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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도산서당(부 고산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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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山書堂(附 高山塾) |
주소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문방3길 25-11(문방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기념물 제59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10월 15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415㎡ |
웹사이트 | 도산서당(부 고산숙),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목차
해설문
국문
도산서당
서당과 서원은 조선시대의 사립학교로, 서당은 초등 교육을 맡았으며 서원에서는 고등교육이 이루어졌다.
이 서당은 조선 정조 23년(1799) 홍우범(洪宇範, 1777~1856)이 초가집을 세워 ‘죽림재’라 하고 교육을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순조 6년(1806) 그 후손들이 서당을 확장하여 ‘대방재’로 이름을 바꾸고, 배우고자 하는 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와서 배울 수 있게 하였다. 그 후 운영을 계승한 홍우범의 조카 홍영이 부족한 공간을 보완하고자 문중의 뜻을 얻어 철종 11년(1860)에 현재의 위치에 서당을 확장하여 세우고, ‘도산서당’이라 하였다.
조선 말엽의 건축물로 특이한 형태는 아니지만 오늘날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조선 말기의 건축을 대표하는 형태이다. 또한 신분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교육을 실시하였으며, 많은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6·25전쟁 이후부터 1966년까지 상록학원을 개설하여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육하여 국가 및 지역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고산숙
서당과 서원은 조선시대의 사립학교로, 서당은 초등 교육을 맡았으며 서원에서는 고등교육이 이루어졌다.
이 서당은 조선 정조 23년(1799) 홍우범(洪宇範, 1777~1856)이 초가집을 세워 ‘죽림재’라 하고 교육을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순조 6년(1806) 그 후손들이 서당을 확장하여 ‘대방재’로 이름을 바꾸고, 배우고자 하는 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와서 배울 수 있게 하였다. 고종 9년(1872)에 성산 이씨 문중의 이문승이 중심이 되어 기존의 ‘대방재’를 고쳐짓고, 이름을 고쳐 ‘고산숙’이라 하였다.
조선 말엽의 건축물로 특이한 형태는 아니지만 오늘날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조선 말기의 건축을 대표하는 형태이다. 또한 신분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교육을 실시하였으며, 많은 인재들을 양성함으로써 국가 및 지역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영문
Do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with Gosansuk Village Study Hall)
도산서당
Do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A village study hall, called seodang in Korean, was a local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established to teach classical Chinese and elementary Confucian classics.
The history of Do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begins in 1799 when the scholar Hong U-beom built a quaint thatched-roof building as a place to teach his students about 200 m to the northeast of this location. In 1806, his descendants expanded the building and named it Daebangjae Hall. Here, anyone regardless of social status was welcomed to study. As the number of students grew, a larger building was needed. So, in 1860, Hong U-beom's nephew Heong Yeong had the study hall built anew on a larger scale at its current location and gave it its current name. Thereafter, Do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continued the practice of egalitarian education, cultivating many talents in the process. From 1953 to 1966, the study hall was used by Sangnokagwon Academy, which played a major role in the development of national and local culture.
The building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on each side, which is the typical layout of study halls of the late Joseon period.
Located 200 m to the northeast is Gosansuk Hall, which was built in 1872 on the former site of Daebangjae Hall.
- "오늘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양식이며,"
- 어느 기준에서 하는 말인가요? 사찰 불전이나 한옥, 관아건물, 정자 등이 다 조금 다른데... 서당의 구조를 말하는 건가요? 이 말이 뭔가 맞는 말 같지도 않아서 생략했어요.
- 보수 사업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용 추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산숙
Gosansuk Village Study Hall
A village study hall, called seodang in Korean, was a local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established to teach classical Chinese and elementary Confucian classics.
Gosansuk Village Study Hall was established in 1872 by Yi Mun-seung and other members of the Seongsan Yi Clan. It stands on the former site of Daebangjae Hall, the predecessor to Do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which is located 200 m to the southwest.
This site was originally occupied by a thatched-roof study hall built in 1799 by the scholar Hong U-beom as a place to teach his students. The thatched-roof building was replaced by Daebangjae Hall in 1806. Here, anyone regardless of social status was welcomed to study. Over time, the number of students grew, necessitating the construction of the larger Dosanseodang Village Study Hall in 1860. Daebangjae Hall was left on its site and was later renovated by the Seongsan Yi Clan into the larger Gosansuk Village Study Hall. Gosansuk Village Study Hall continued the practice of egalitarian education, cultivating many talents in the process, and thus playing a major role in the development of national and local culture.
영문 해설 내용
도산서당
서당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으로,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한문을 가르쳤다.
도산서당은 1799년 학자 홍우범이 초가집을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1806년 그 후손들이 서당을 확장하여 ‘대방재’로 이름을 바꾸었고, 배우고자 하는 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와서 배울 수 있게 하였다. 홍우범의 조카 홍영이 서당 운영을 이어받은 후에는 부족한 공간을 보완하고자 1860년에 현재의 위치에 서당을 옮겨 확장하고 ‘도산서당’이라 이름을 붙였다. 도산서당에서는 신분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교육을 실시하며 많은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1966년까지는 이곳에 상록학원을 개설하여, 국가 및 지역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도산서당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다. 오늘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양식이며, 조선 말기의 건축을 대표하는 형태이다.
고산숙
고산숙은 1872년 성산이씨 문중의 이문승이 중심이 되어 세운 서당이다.
문방리 마을에는 1799년 학자 홍우범이 초가집을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던 서당이 있었다. 1806년 그 후손들이 서당을 확장하여 ‘대방재’로 이름을 바꾸었고, 배우고자 하는 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와서 배울 수 있게 하였다. 1860년 서당이 다른 곳으로 옮겨 확장되면서 ‘도산서당’이라 하였고, 대방재가 있던 자리에는 1872년 기존의 건물을 고쳐 지어 서당을 짓고 ‘고산숙’이라 하였다. 고산숙에서는 신분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교육을 실시하였고, 많은 인재들을 양성함으로써 국가 및 지역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자료
- 도산서당(부고산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5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