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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봉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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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1166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6월 28일 (화) 07:10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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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봉저정
노들강을 건너가 쉬던 행궁, 용양봉저정, 『서울·경기·인천 문화유산 이야기여행』, 문화재청, 2013, 92쪽.
대표명칭 용양봉저정
한자 龍驤鳳䎝亭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32길 14-5 (본동)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
지정일 1972년 5월 2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건물 1棟, 토지 162.6㎡
웹사이트 용양봉저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용양봉저정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갈 때 배다리*로 한강을 건넌 후 쉬어 가던 노량행궁의 중심 건물이다. 왕이 점심을 들었다하여 주정소(晝停所)**라고도 하였다. 『홍재전서』14권 「용양봉저정기」의 기록에 따르면, 본래 이곳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이 소유한 망해정(望海亭)이라는 정자였으나 정조 13년(1789)에 구입하였다고 한다. 정조 17년(1793)에 정조는 이곳에서 주위를 살펴보고,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고 봉황이 나는 것 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하다.”라며 ‘용양봉저정’이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정조 이후에도 많은 왕이 노량행궁을 이용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용양봉온천’이라는 유락 시설로 쓰일 정도로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에도 도로 확장 등으로 주변 대부분이 사라지고 지금은 용양봉저정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화성능행도병』의 「한강주교환어도」와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주교도」를 통해 그 당시의 용양봉저정과 배다리를 관장한 주교사 등 노량행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용양봉저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마루와 온돌방으로 꾸몄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온돌방은 사라지고 지금은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만 남아 있다.


  • 배다리: 교각을 세우지 않고 널판을 걸쳐 놓은 나무다리.
  • 주정소: 조선 시대에 임금이 거둥하다가 머물러 낮수라를 들던 곳.

영문

Yongyangbongjeojeong Pavilion

Yongyangbongjeojeong Pavilion was built by King Jeongjo (r. 1776-1800) as a place for rest that he used after crossing the Hangang River during the royal processions to the tomb of his father Prince Sado (1735-1762). To build the pavilion, in 1789, King Jeongjo purchased this land, which was priorly occupied by another pavilion owned by the family of Yi Yang-won (1526-1592), who served the post of chief state councilor. It is said that the name of the pavilion was made up by Jeongjo himself in 1793 and means “the Pavilion of the Straightened Up Dragon and the Soaring Phoenix,” a figure of speech, presumably symbolizing the foundation of the prosperous country” inspired by the view of the steep mountains and the bending Hangang River to the north witnessed by the king when he stood here.

It is presumed that the pavilion was a part of a complex, which consisted of 2-3 more buildings including a main gate and was known as Noryanghaenggung Palace. This complex including the pavilion can be seen on the Folding Screen of Royal Procession to Ancestral Tomb in Hwaseong (Hwaseong neunghaengdobyeong) depicting the King Jeongjo’s procession that took place in 1795, as well as the Royal Protocol of Procession to Ancestral Tomb on Lady Hyegyeong's 60th birthday (Wonhaeng eulmyo jeongni uigwe) documenting the same event. The complex was also used by several of Jeongjo’s successors, but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1910-1945), repurposed as a hot spring facility, it was significantly damaged. In the following years, most of the complex was demolished due to road construction, and only the pavilion remains.

The pavilion has a hip-and-gable roof and originally consisted of a wooden-floored hall and underfloor-heated room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the original layout of the building was changed to the current layout featuring one large wooden-floored hall.

영문 해설 내용

용양봉저정은 정조(재위 1776-1800)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화성 현륭원으로 행차할 때 한강을 건넌 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원래 이곳에는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1526-1592) 문중에서 소유한 정자가 있었는데, 정조가 1789년에 이 땅을 구입한 뒤 이 정자를 지었다. 용양봉저정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1793년 직접 지은 것으로 “용이 머리를 들고 봉황이 날아오르는 정자”라는 뜻이다. 정조는 이곳에서 주위를 살펴보고,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고 봉황이 나는 것 같아 억만년 가는 국가의 기반을 의미하는 듯하다.”라며 정자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원래는 정자 외에도 정문 등 2~3채의 건물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노량행궁이라고도 불렸다. 1795년에 있었던 정조의 화성 행차를 그린 『화성능행도병』과 당시 행사의 전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 용양봉저정을 비롯한 당시 노량행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노량행궁은 정조 이후에도 여러 왕들이 이용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온천 시설로 쓰이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에도 도로 확장 등으로 주변 대부분이 사라지고 지금은 용양봉저정만이 남아 있다.

용양봉저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원래 마루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온돌방은 사라지고 지금은 마루만 남아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