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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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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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백인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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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忍堂 |
주소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1길 36-1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7호 |
지정(등록)일 | 1994년 4월 1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백인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이 건물은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보통 재실이라 한다. 경산 이씨의 선조인 이함*, 이번*, 이흥문*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인 이주, 이륜이 조선 현종 2년(1661)에 세운 건물이다. 백인당이라는 이름은 “참는 것이 곧 덕이요. 참음으로써 인을 이룰 수 있다.”라는 문장과 “하루를 참으면 백일을 면한다.”는 문장을 본받아 종친 간의 화목을 바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한 백인당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은 경산 이씨 집성촌으로 이 마을 이름도 백인당의 명칭을 따라 백인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인당은 팔작지붕집*으로, 중앙의 마루를 중심으로 양 옆에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양쪽 온돌방 앞쪽으로 툇칸을 두고 난간을 세워 건물의 격을 높였다.
백인당 내에는 이흥문이 제주도에서 가져와 심은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그루가 근래 옮겨진 후 자생하고 있어 그 역사성을 더하고 있다.
- 이함은 고려 시대 소부시의 종3품 벼슬인 소부윤을 지냈다. 소부시는 궁중의 공예품과 보물의 보관에 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었다.
- 이번은 강원도 양양지역을 관할하던 지방관인 양양부사를 지냈다.
- 이흥문은 사헌부의 장관인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사헌부는 언론 활동, 관리 규찰, 탄핵 등을 담당하였다.
- 팔작지붕은 시기적으로 가장 늦게 나타난 지붕으로, 맞배지붕이나 우진각지붕에 비해 복잡하지만 외관상 위용으로 인해 규모에 관계없이 중심건물에 즐겨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