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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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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재
구강재, 성주문화관광.
대표명칭 구강재
한자 龜岡齋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성주로 1037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0호
지정(등록)일 1993년 11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구강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건물은 흙으로 쌓은 담장 안에 구강재와 고직사로 구성되어 있다. 구강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이고, 고직사는 구강재를 지키고 관리하던 사람이 살던 건물이다. 구강재에서는 여희림을 모시고 있다. 여희림은 조선 중종 2년(1507) 과거에 급제하였다. 조선 중종 11년(1516년) 고향인 성주로 돌아와 향약*을 시행하였고 그 이듬해 왕자인 복성군의 스승이 되었다.

여희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묘 곁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였다. 그 후 여희림의 아들 여심이 시묘살이 여막을 헐고 그 터에 구강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1996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구강재라는 명칭은 풍수지리 측면에서 볼 때, 여희림 아버지의 묘 터가 강에서 놀던 거북이가 알을 낳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형국이라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

일반적으로 재실의 평면구성은 마루가 중앙에 위치하고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되는 중당협실형으로 꾸미는데 반해 구강재는 마루가 좌측으로 위치하면서도 온돌방 앞쪽의 툇간도 마치 마루처럼 넓게 되어있다.


  • 향약 : 향약은 향촌사회의 주민들이 지켜야 할 규약으로, 중국 북송 때 처음 만들어졌다. 조선에서는 중기에 전국적으로 향약이 시행되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