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송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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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기존 문안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송은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송형구(宋亨久, 1598~1675)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마하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현종 5년(1664)에 세운 정자이다. 건물의 이름도 그의 호를 따서 붙였다.

원래 안동 서후면 이송천(二松川) 근처에 처음 세웠는데, 본래의 건물은 쇠락해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그의 후손 송인명(宋仁命, 1870~1942)이 조상을 기리며 1932년 태장리에 다시 지었다.

건물은 왼쪽에 온돌방을, 오른쪽에 마루방을 배치하였으며, 전면에는 툇마루를 넓게 내고 계자난간을 둘러 꾸몄다.

  • 현재의 건물, 특히 건물 하부의 시멘트 기둥이 1933년 당시의 것인지, 후대에 보수한 것인지 확인 필요함.
  • 마루방의 옆과 뒤는 나무판자로 된 벽을 세우고, 여닫이문을 달았다. / 내부에는 향촌 사림들의 시를 새긴 편액이 걸려있다.
  • 송형구(宋亨久,1598~1675)는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신으로, 인조 20년(1642)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그는 역법에 관심이 많았고, 원나라 허형(許衡)이 만든 대통력(大統曆)을 계속 사용할 것에 대한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차 수정

송은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송은 송형구(松隱 宋亨久, 1598~1675)가 현종 5년(1664) 이송천(二松川) 근처에 처음 세운 정자이다. 원래의 정자는 시간이 흘러 쇠락하였고, 송형구의 후손 송인명(宋仁命, 1870~1942)이 1932년 태장리로 옮겨 지금의 건물을 다시 지었다.

송형구는 안동 출신으로 인조 20년(1642)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지냈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송은정에서 지역 사림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학문을 닦았다.

송은정은 왼쪽에 온돌방, 오른쪽에 마루방이 있고, 앞면에는 난간을 두른 툇마루가 있다. 정자 안에는 송은정의 내력을 기록한 글과 이곳을 찾은 문인들이 남긴 시를 새긴 편액들이 걸려 있다.

  • 송은정의 이건 시기는 현재 송은정에 걸려 있는 「송은정 약사(松隱亭 略史)」 편액의 내용을 참고로 함. (안동의 정자, 송은정(松隱亭)_190101, 겨울섬, 개인 블로그, 2019.01.28. https://gotn.tistory.com/703 에서 확인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