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동 목장성
수정동 목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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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수정동 목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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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晶洞 牧場城 |
해설문
국문
조선 시대 전국의 목장 정보가 기록된 『목장지도(1678)』에 따르면 동래부에는 절영도 목장(지금의 영도), 석포 목장(지금의 우암동 일대), 오해야항 목장(지금의 동구·서구·사하구 일대)이 있었다. 수정동 목장성은 오해야항 목장의 바깥성에 해당한다.
『목장지도』에 따르면 오해야항 목장성은 길이 60리 규모로 암남동∼다대포 구간의 내성(內城), 토성동∼하단동 구간인 중성(中城), 부산항∼엄궁동 사이인 외성(外城)의 3중 구조였음을 알 수 있다. 『태종실록』에서는 당시 동래부에서 가장 큰 목장이었던 오해야항 목장성은 태종 16년(1416)에 세웠는데 말 700여 필을 방목하였다고 한다.
수정동 목장성은 동구 수정동 동여자중학교 뒤쪽의 능선에서부터 부산진구 가야, 개금에 걸쳐 1.7km 정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성벽 일부는 너비 3.5m, 높이 2m 정도의 양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정동 목장성은 조선 시대 동래부의 남쪽 전체가 말을 키우던 목마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수정동 목장성은 조선시대에 말을 키우던 오해야항 목장성 바깥 쪽에 축조된 외성이었다. 오해야항 목장성은 총 길이가 60리(약 24km) 규모로 내성, 중성, 외성의 3중 구조였다. 수정동 목장성은 동구 수정동 동여자중학교 뒤쪽의 능선에서부터 부산진구 가야동과 개금동에 걸쳐 길이 약 1.7k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성벽은 대체로 양호한 상태이며, 너비 3.5m, 높이 2m 정도이다. 수정동 목장성은 조선시대 동래부(지금의 부산 동래구 지역)의 남쪽 전체가 말을 키우던 목마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조선시대 전국의 목장 정보가 기록된 『목장지도(1678)』에 따르면 동래부에는 절영도 목장(지금의 영도), 석포 목장(지금의 남구 우암동 일대), 오해야항 목장(지금의 동구·서구·사하구 일대)이 있었다. 『태종실록』 중 1416년 음력 1월의 한 기사에 “오해야항 목장에 말 700여 필을 방목하였더니 그 말들이 아주 잘 자랐다. 이곳은 사철 방목할 수 있어 목장으로 적당한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해야항 목장은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
- 수정동 산성 터, 부산역사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01111
- 오해야항 목장 중성터, 부산역사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05401
- 『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 1월 21일 갑인 2번째기사(1416년, 명 영락(永樂) 14년), “한성부 윤 안등이 청하여 경상도 김해에 목장을 만들다.”. http://sillok.history.go.kr/id/kca_11601021_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