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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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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정
대표명칭 승가정
한자 勝嘉亭



해설문

국문

1895년(고종 32) 경상도 내 31개 수군진성의 실태를 기록한『영남진지(嶺南鎭誌,1895)』중「부산진지(釜山鎭誌)」편에는 부산진의 수군 조직과 재정 및 부산진성 내 관청건물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자성(子城)·누대(樓臺)·육우정(六隅亭)을 설명한 곳에서 부산진성의 장대(將臺: 장수의 지휘소)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구 부산진성(정공단 부근)을 헐고 그 성의 동남쪽에 자성대 왜성을 쌓았는데 성 안에 있는 높은 곳을 따라 자성(子城)*을 쌓아 장대(將臺)**로 삼았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자성대 왜성을 부산진성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임인년(1842)에 부산진 첨사 이희봉(李熙鳳)이 자성 위에 ‘육우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승가(勝嘉)’라는 이름을 붙인 뒤 ‘자성은 부산진의 장대가 되고, 승가는 자성의 장대가 된다.’고 하였다.

1974년 부산진성을 정비하면서 승가정 자리에 정면 5칸, 측면 4칸, 2층 규모의 팔작지붕을 갖춘 장대를 복원하였다.


  • 자성(子城): 본성(本城)에 딸려서 따로 쌓은 작은 성.
  • 장대(將臺):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ㆍ지휘하기 위해 돌로 쌓아 만든 것.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승가정은 전쟁 또는 군사훈련 시에 대장이 성 안의 군사들을 지휘하기 위해 1842년에 설치한 장대이다. 원래의 승가정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고, 1974년 승가정 자리에 팔작지붕을 갖춘 2층 규모의 장대를 다시 세웠다.

1895년 경상도 내 31개 수군진성을 기록한 『영남진지(嶺南鎭誌)』 중 「부산진지(釜山鎭誌)」편에는 부산진의 수군 조직, 재정, 부산진성 내 관청건물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적이 지금의 정공단 부근에 있던 옛 성을 헐고 그 성의 동남쪽에 자성대 왜성을 쌓았으며, 성 안에 있는 높은 곳을 따라 자성(子城)을 쌓아 장대로 삼았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조선 수군이 자성대 왜성을 고쳐서 부산진성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1842년에 부산첨절제사 이희봉이 부산진성 위에 정자를 짓고 ‘승가정’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자성은 부산진의 장대가 되고, 승가정은 자성의 장대가 된다.’고 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