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무장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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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무장객사
Guesthouse of the Mujang Local Government
고창 무장객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창 무장객사
영문명칭 Guesthouse of the Mujang Local Government
한자 高敞 茂長客舍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읍성길 45 (성내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지정(등록)일 1973년 6월 23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고창 무장객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건물이다. 객사는 중앙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정청(正廳)과, 그 좌우에 공무로 찾아온 관리들의 숙소인 익헌(翼軒)이 있는 관아 건물이다.

무장객사는 중앙의 정청이 좌우의 익헌보다 한 칸 앞으로 돌출되었다. 지붕구조는 정청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고, 좌우 익헌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솟을지붕 모양이다. 이 객사는 정청을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인조 27년(1649)에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객사 건물은 1936년부터 1987년까지 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일부 고쳤다가, 1990년에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객사 정청에는 ‘송사지관(松沙之館)’의 현판이 있다. 조선 태종 17년(1417)에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長沙縣)을 합치면서 각각 앞글자를 따서 지명을 무장(茂長)이라 했다. ‘송사(松沙)’는 각각 뒷글자를 따서 무장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무장객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객사와 기단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유적이다. 객사 건물의 석축 기단을 오르내리는 계단에는 서쪽에 호랑이, 동쪽에 용을 새겼다. 기단 양옆의 모서리 돌에도 연꽃과 화병 그림을 새겼는데 무장객사를 지을 때 사찰의 기단석을 철거해 다시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성리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던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을 엿볼 수 있다.


  • 전패(闕牌) : 국왕을 상징하는 ‘전殿’자를 새긴 나무패로, 조선시대 고을 객사 안에 모심.
    • 상량문(上樑文) : 건물 지을 때, 최상부 부재인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식의 축문.

영문

Guesthouse of the Mujang Local Government

A guesthouse, called gaeksa in Korean, was a part of a local government office during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The guesthouse consists of a shrine in the center, where a wooden tablet symbolizing the king was held, and a room to each side, which was used as temporary lodging for important guests or officials visiting the region on duty. The wooden tablet, enshrined in each local guesthouse, exhibited the king’s sovereignty across the country. To acknowledge this sovereignty, the local magistrate and other officials regularly performed a ceremony here in which they prostrated themselves toward the royal capital.

This guesthouse was a part of the government office of Mujang-hyeon Prefecture (today’s Mujang-myeon Township, Gochang) during the Joseon period. Mujang-hyeon was created in 1417 by merging the prefectures of Musong-hyeon and Jangsa-hyeon, and its name come from the first syllables of each prefecture. Although the construction of Mujangeupseong Walled Town was already completed in 1417, it remains unknown when the guesthouse was first established. The current building dates to 1649. From 1936 to 1987, the building was used as Mujang-myeon Office, during which time it underwent some renovations. In 1990, the building was restored to its original appearance.

The guesthouse consists of a central section and two wing sections. The central section extends slightly forward and features a gable roof, while the wing sections feature hip-and-gable roofs. The building’s name plaque reads Songsajigwan, meaning the “Guesthouse of Songsa,” another name for Mujang that comes from the second syllables of Musong-hyeon and Jangsa-hyeon Prefectures.

This guesthouse has the most well-preserved stone platform among extant guesthouses in Korea. The stairs feature carvings of a tiger and a dragon on the left and right sides, respectively, while the corner stones are engraved with lotus and vase designs. These designs are evidence that the stone platform of a nearby Buddhist temple was taken apart and reused when building this guesthouse, showing how the policy of “revering Confucianism and suppressing Buddhism” was implemented in the Joseon period.

영문 해설 내용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고을 관아에 설치했다. 객사는 가운데에 왕의 전패를 모신 정청이 있고, 좌우 양쪽에는 공무로 출장 온 관원이나 고을을 찾은 중요한 손님들이 숙소로 사용되던 익헌이 있다. 객사에 모셔진 전패는 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권을 바탕으로 고을 수령과 관리들은 궁궐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를 행했다.

무장객사는 조선시대 무장현(지금의 고창 무장면) 관아의 부속 건물이다. 1417년 무송현과 장사현을 합치면서 각각 앞글자를 따서 무장현이라 하였다. 1417년에 무장읍성이 축조되었지만, 객사 건물은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지금의 건물은 1649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1936년부터 1987년까지 무장면사무소로 사용되면서 일부 변형되었다가, 199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고쳤다.

무장객사는 중앙의 정청이 좌우의 익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청은 익헌보다 한 칸 앞으로 돌출되어 있고 맞배지붕을 올렸으며, 익헌은 팔작지붕이다. 정청 정면에는 ‘송사지관’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송사’는 무송현과 장사현의 각각 뒷글자를 따서 무장을 달리 표현한 이름이다.

무장객사는 전국에 남아 있는 객사 중 기단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석축 기단을 오르내리는 계단에는 왼쪽에 호랑이, 오른쪽에 용을 새겼고, 기단 양옆의 모서리 돌에도 연꽃과 화병 그림을 새겼다. 이러한 문양이 남아 있는 것은 무장객사를 지을 때 인근 사찰의 기단석을 철거해 다시 사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던 정책을 엿볼 수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