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삼호정
고창 삼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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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고창 삼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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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敞 三湖亭 |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9호 |
지정(등록)일 | 2021년 4월 9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
시대 | 조선후기 |
수량/면적 | 1필지 1동 536㎡ |
웹사이트 | 고창 삼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삼호정은 영조27년(1751)에 옥천 조씨인 인호 조현동(仁湖 趙顯東), 덕호 조후동(德湖 趙垕東), 석호 조석동(石湖 趙錫東) 삼형제가 인천강변에 은거하며, 글을 읽고 풍류를 즐기려 지은 정자이다. 삼형제의 호는 첫째는 인천강 이름을 따라 인호라고, 둘째는 강물의 성품을 따라 덕호라고, 셋째는 물의 여울 이름을 따라 석호라고 지었다. 모두 호(湖) 자가 있어 삼호정이라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정자가 사라지자 고종 1년(1864)에 후손 조윤모와 조한모 등이 다시 지었다.
정자는 규모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지붕이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자리한 방을 포함해 바닥은 전체가 마루인데 방 뒤쪽 가운데 마루는 한 단 높게 만든 누마루이다. 이런 평면과 외관은 호남지방 정자의 일반적 특징이다. 정자 건물은 기초석 형태와 처마를 떠받치는 공포의 형식, 부재들의 짜맞춤 수법이 독창적이어서 건축학적 가치가 있다.
정자에는 조후동이 삼호정의 유래와 건립 목적을 쓴 글과 삼형제의 시를 새긴 현판이 있다. 이와 함께 송시열 후손인 입재 송근수가 삼호정을 다시 세운 유래를 쓴 글과 일제강점기 고창 문인인 염재 송태회, 보정 김정회, 학산 김노수 등의 시를 새긴 현판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삼호정은 옥천조씨 가문의 조현동(호: 인호), 조후동(호: 덕호), 조석동(호: 석호) 삼형제가 인천강을 바라보며 글을 읽고 풍류를 즐기려 1751년에 지은 정자이다. 삼형제의 호에 모두 호(湖) 자가 있어 정자의 이름을 삼호정이라고 하였다. 원래의 정자는 세월이 흘러 허물어지고 후손들이 1864년에 지금의 정자를 다시 지었다.
정자는 팔작지붕을 얹었고, 가운데에 마루방을 두고 사방으로 마루를 둘렀다. 이러한 평면 구조는 전라도 지방 정자의 일반적 특징이다. 방 뒤쪽의 마루는 한 단 높게 만든 누마루이다.
정자에는 삼형제를 비롯하여 이곳을 찾은 문인들이 남긴 글을 새겨놓은 현판들이 많이 걸려 있다. 이 중에는 조후동이 삼호정의 유래와 건립 목적을 쓴 글이 있고, 문신 송근수(1818-1903)가 삼호정을 다시 세운 유래를 쓴 글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고창 지역 문인들의 시도 있다.
- 일부 자료에 삼형제가 각각 인천강, 덕천강, 석천강 가에 살아서 인호, 덕호, 석호라고 호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음. 국문 집필한 연구소에 문의한 결과, 이 내용은 근거가 없다고 함.
- 정자에 남은 현판 등 문헌에 따르면 "첫째는 인천강 이름을 따라 인호라고, 둘째는 강물의 성품을 따라 덕호라고, 셋째는 물의 여울 이름을 따라 석호라고 지었다."고 함. '물의 여울 이름을 따라'라는 부분이 정확하지 않은데, 인천강이라는 큰 강줄기 중 어느 한 부분(여울)의 이름에 '석'자가 들어갔던 것으로 추정함.
- 영문에서 이 내용을 설명하기 복잡하고 길어질 것 같아 호의 뜻 설명은 생략하기로 함.
참고자료
- 옥천조씨, 디지털고창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gochang.grandculture.net/gochang/toc/GC02800694
- 블로그 기자가 간다 - 삼형제의 우애가 간직된 ‘삼호정’, 안녕하세요 고창군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2019.04.10. https://blog.naver.com/topgochang/221510574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