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의용단
25의용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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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25의용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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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25義勇壇 |
주소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362 |
지정(등록) 종목 |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 |
지정(등록)일 | 1972년 6월 2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7,518㎡ |
웹사이트 | 25의용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조선의 민초 25의용(義勇)과의 역사적 만남
임진왜란으로 삶의 터전인 수영성이 위기에 처하자, 성문 밖 선서바위에 모여 피로써 맹세한 후 7년간 왜적과 맞서 싸운 의로운 스물다섯 분의 수병(守兵)과 성민(城民)이 있었다.
임란이 발생한 지 17년 후(광해군 원년) 동래부사 이안눌(李安訥)이 백성의 탄원서에 따라 25인의 행적을 찾아 그의 집 문 앞에 “의용(義勇)”이란 푯말을 걸어 그 뜻을 기리도록 하고, 정방록(旌榜錄)에 기록하였다. 또한 순조 때에는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이들의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하고, 글을 지어 포상하였다.
현재에 이르러 수영사적공원에 조성된 25의용단(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에는 25인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9월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수영의 정신적 뿌리인 스물다섯 분의 존함을 기억하고 나라를 위한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수영성길로 25의용(義勇)을 모셔, 그 충절의 뜻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목숨을 걸고 수영성을 지켜낸 25의용(義勇)과의 역사적 만남을 통하여 호국정신을 되새기고, 그들이 품었던 높은 뜻을 계승해 나가고자 한다.
- 25의용
김옥계(金玉戒), 정인강(鄭仁彊), 이희복(李希福), 최송엽(崔松葉), 최수만(崔守萬), 박지수(朴枝樹), 김팽량(金彭良), 박응복(朴應福), 심 남(沈 男), 이은춘(李銀春), 정수원(鄭壽元), 박 림(朴 林), 신 복(辛 福), 이 수(李 壽), 최한연(崔汗連), 최한손(崔汗孫), 최막내(崔莫乃), 최말량(崔唜良), 김달망(金達亡), 김덕봉(金德俸), 이실정(李實貞), 김허농(金許弄), 주난금(朱難金), 김종수(金從守), 김진옥(金進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