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세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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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초고

세덕사는 임진왜란 때 훈련대장을 역임한 탁순창(卓順昌)이 전쟁이 끝난 후 안동으로 내려와 조상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숙종 25년(1699)에 지은 사당이다.

이곳에는 탁순창의 6대조 탁광무(卓光茂, 1330~1410)와 그의 아들 탁신(卓愼, 1367~1426)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탁광무는 고려 충혜왕 1년(1331) 과거에 급제한 후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들과 교유했고, 탁신은 조선 태조 4년(1395)에 벼슬길에 오른 뒤 세종대까지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정문과 강당, 사당인 세덕사까지 3동의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어졌으며, 매년 3월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 추원당의 배면과 세덕사의 전면에는 나무 판자로 된 문이 달려 있다.
  • 추원당에는 ‘오계서당’이라 적힌 현판이 함께 걸려있는데, 이 서당에 관련한 이야기는 검색되지 않으며, 수몰 이전 원래 있었던 곳이 어디인지도 검색되지 않음 -> 확인 필요
  • 탁광무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안동으로 내려온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항목 내용 참조), 것은 처가가 안동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므로 확인 필요함.

1차 수정

세덕사는 임진왜란 때 훈련대장을 지낸 탁순창(卓順昌)이 7대조인 탁광무(卓光茂, 1330~1410)와 6대조인 탁신(卓愼, 1367~1426)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숙종 25년(1699)에 지은 사당이다.

탁광무는 고려 충혜왕 복위 원년(1340)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다.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과 교유하였으며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탁광무의 아들 탁신은 창왕 1년(1389)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늙으신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조선 정종 때 효행으로 추천을 받아 관직에 올랐고 이후 세종 대까지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경학에 밝고 음률과 무예까지도 통달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정문, 강당, 사당인 세덕사까지 3동의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어졌으며, 매년 3월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 * 원래 위치 확인 필요.

안동시 피드백

  1.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는 탁광무가 ‘6대조’, 탁신은 ‘5대조’로 제시되어 있어 확인이 필요합니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공양왕 1년’(1389)에 급제한 것으로 나와 있어 어느 쪽이 적절한지 확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