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삼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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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김상구(金相龜)가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당호인 삼벽당은 김상구의 아들 김종한(金宗漢)의 호이다. 김종한은 동몽교관과 자헌대부동지중추부사(資憲大夫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건립연대는 1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마을 중앙부분에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口’자형 목조 기와집으로 우측에 연당(蓮堂)을 두었으나 가옥이 쇠락하면서 연당의 아름다운 모양은 없어지고, 나이가 높은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대문채는 따로 두지 않았다.

조선 후기의 민가 건축으로 ‘口’자에 양 날개를 1칸씩 더 확대한 형태와, 가묘나 사당이 없을 경우 사랑부분에 설치되는 벽감과 수장공간의 확보 및 결구 수법 등 독특한 형식을 지닌 조선 후기 양반집의 모습을 보여 준다.

수정 국문

초고

삼벽당은 풍산 김씨 21대손 김상구(金相龜, 1743~1814)가 분가하면서 지은 살림집으로, 18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의 이름은 김상구의 아들 김종한(金宗漢, 1770~1814)의 호를 딴 것이다.

이 집은 ‘ㅁ’자형의 기본구조에 양쪽 날개가 1칸씩 달려 있는 형태이며, 다락을 설치해 수납 공간을 확보하는 등 조선 후기 안동 지방 민가의 특성을 잘 보존하고 있다.

대문채나 사당과 같은 건물은 따로 두지 않았으며, 가묘를 대신해 사랑 공간에 벽을 파고 감실을 마련해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한 공간을 둔 것이 특징적이다.

*검색되는 자료 거의 없음.

  • 인물 생몰년 : 풍산김씨 족보 기준 작성 / 배영동, 『(경북의 종가문화) 청백정신과 팔련오계로 빛나는, 안동 허백당 김양진 종가』, 예문서원, 2016, p.107 표에서 김종한의 정보 일부가 확인된다. 호는 죽오(竹塢), 설송파(김대현의 아들 김숭조(金崇祖1598-1632)의 분파)이며, 생몰년은 1746~1814로 되어 있다.

1차 수정

삼벽당은 풍산김씨 21대손 김상구(金相龜, 1743~1814)가 분가하면서 지은 가옥으로 18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집의 이름은 김상구의 아들 김종한(金宗漢, 1770~1814)의 호를 딴 것이다.

‘ㅁ’자형의 기본 구조에 양쪽 날개가 1칸씩 달린 형태이고 대문채나 사당 등의 건물은 따로 두지 않았다. 사랑에 감실을 설치하여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였으며, 다락을 두어 수납 공간을 확보하는 등 조선 후기 안동 지방 민가의 특성을 잘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