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자(경주 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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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 垓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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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경주 월성 |
해설문
국문
해자는 성곽 둘레를 따라 땅을 파고 물을 담아 적이 쉽게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 방어 시설을 말한다. 신라 왕궁이었던 월성은 남쪽의 남천과 북쪽의 해자로 둘러싸여 물에 의해 보호되었었다.
월성의 해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때를 기점으로 그 모습과 기능이 변하였다. 통일 전인 4~7세기에는 수혈 해자*로서, 수로와 같은 모습이었으며 방어와 배수가 중요한 기능이었다. 그러나 삼국 통일 후인 8세기 이후에는 석축 해자**를 세웠으며, 이전보다 규모가 축소되고 좁은 수로로 연결된 여러 개의 독립적인 연못처럼 바뀌었다. 이 시기의 해자는 방어보다 조경의 의미가 강했다. 9세기 무렵 관청이 확장되면서 해자는 더욱 축소되어 결국 폐기되고, 그 위에 여러 건물들이 세워졌다.
월성 해자의 존재는 1984년 시굴 조사***를 통해 비로소 알려졌다. 이후 여러 차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재현·정비공사가 진행되었다. 해자의 재현은 발굴된 원래의 해자를 훼손하지 않고 가장 잘 남아 있는 석축을 기준으로 한다는 기본 방향 아래 계획되었으며, 이에 따라 물을 담은 석축 해자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월성은 『삼국사기』의 “101년 신라 제5대 왕인 파사이사금이 성을 쌓았다”라는 기사를 비롯해 여러 문헌에 등장하지만, 내부의 구체적인 구조 또는 해자와 같은 주위 시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월성 해자는 월성의 옛 모습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열쇠라고 할 수 있다.
- 수혈 해자: 땅을 파서 만든 해자
- 석축 해자: 돌을 쌓아 만든 해자
- 시굴 조사: 발굴 조사 전에 시험적으로 굴착하여 조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