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성산공원(동산) 문화유적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4월 13일 (수) 11:10 판 (국문)

이동: 둘러보기, 검색


성산공원(동산) 문화유적
대표명칭 성산공원(동산) 문화유적
한자 聖山公園(東山) 文化遺蹟



해설문

국문

성산공원은 조선 시대 고지도에 동산東山으로 표기되어 있어 과거에는 동산으로 불렸던 해발 90m의 낮은 산이다.

조선 시대에 전란1)을 겪으면서 장성 입암산성(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 중요한 관방시설2)로 대두되었다. 효종 6년(1655)에 장성현이 장성도호부3)로 승격되고, 치소4)를 동산 남측의 성산리, 수산리 일원으로 하고, 관아5)를 지금의 장성성산초등학교 자리에 세웠다. 동산은 이 당시 장성도호부의 진산6)으로 역사적ㆍ지리적으로 장성에서 중요한 산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동산 봉우리에 신사7)가 있었고, 현재도 공원 입구와 봉우리에는 신사와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다. 공원 입구에는 신사의 시작을 알리는 방형의 돌기둥 2개가 서 있고, 돌기둥을 지나면 나오는 계단 역시 일제강점기 때 설치한 것이다. 돌기둥 주변의 석재는 신사 이름이 새겨진 비(碑)의 받침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동산 봉우리에는 신사의 영역을 표시하는 시설8)에 사용된 기둥, 초석 등이 남아 있다.

공원 입구를 중심으로 좌측(24기)9)과 우측(9기)10)에는 총 32기의 선정비11), 불망비10)가 있다. 이 비석들은 장성 지역에서 관찰사, 부사, 현감 등을 지낸 관리 중에 선정12)을 베푼 사람들을 기리기 위하여 백성들이 세운 비로 장성읍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아 놓았다.

공원 좌측 끝에는 한국전쟁 때 조국과 향토 수호를 위해 몸을 받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9년에 건립한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1. 전란(戰亂) : 전쟁으로 인한 난리
  2. 관방시설(關防施設) : 군사 방어 시설
  3. 도호부(都護府) : 군사 요충지나 일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행정기구
  4. 치소(治所) : 지방정부의 소재지(장성의 현재 소재지는 장성읍 영천리)
  5. 관아(官衙) : 관리들이 나랏일을 보는 곳
  6. 진산(鎭山) : 고을을 지키는 산으로 뒤에 있는 산을 주산(主山), 앞에 있는 산을 안산(案山)이라 한다.
  7. 신사(神社) : 일본에서 왕실의 조상, 고유의 신앙 대상,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참배하게 하는 등 군국주의적 침략정책과 식민지 지배에 이용하였다.
  8. 도리이(鳥居) : 신사(神社) 입구에 세운 기둥문, 신사의 영역임을 표시, 우리나라의 홍살문과 유사
  9. 부사 김이정, 부사 김조연(2기), 부사 심의복, 부사 김진교(2기), 부사 이병례, 부사 정우용, 부사 김재홍, 부사 성정호, 부사 정운소, 부사 서중보, 부사 김윤현, 부사 김오현, 부사 김헌수, 군수 민영복, 순찰사 원두표, 관찰사 서상정, 관찰사 이헌직, 관찰사 김문현, 관찰사 윤웅렬, 직지사 이면상, 찰방 강석일, 참봉 권의연
  10. 관찰사 권암⋅부사 권익, 부사 이낙수, 부사 박좌원, 부사 최종주, 부사 임세량, 부사 박시경, 부사 박증휘, 현감 한진명
  11. 선정비(善政碑) : 백성을 어질게 다스린 벼슬아치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12. 불망비(不忘碑) :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어떤 사실을 적어 세우는 비석
  13. 선정(善政) : 백성을 잘 다스림, 바르고 착하게 다스리는 정치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성산공원은 조선 시대 고지도에 동산東山으로 표기되어 있어 과거에는 동산으로 불렸던 해발 90m의 낮은 산이다.

조선 시대에 전란1)을 겪으면서 장성 입암산성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 중요한 관방시설2)로 대두되었다. 효종 6년1655에 장성현이 장성도호부3)로 승격되고, 치소4)를 동산 남측의 성산리, 수산리 일원으로 하고, 관아5)를 지금의 장성성산초등학교 자리에 세웠다. 동산은 이 당시 장성도호부의 진산6)으로 역사적ㆍ지리적으로 장성에서 중요한 산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동산 봉우리에 신사7)가 있었고, 현재도 공원 입구와 봉우리에는 신사와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다. 공원 입구에는 신사의 시작을 알리는 방형의 돌기둥 2개가 서 있고, 돌기둥을 지나면 나오는 계단 역시 일제강점기 때 설치한 것이다. 돌기둥 주변의 석재는 신사 이름이 새겨진 비碑의 받침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동산 봉우리에는 신사의 영역을 표시하는 시설8)에 사용된 기둥, 초석 등이 남아 있다.

공원 입구를 중심으로 좌측24기9)과 우측9기10)에는 총 32기의 선정비11), 불망비10)가 있다. 이 비석들은 장성 지역에서 관찰사, 부사, 현감 등을 지낸 관리 중에 선정12)을 베푼 사람들을 기리기 위하여 백성들이 세운 비로 장성읍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아 놓았다.

공원 좌측 끝에는 한국전쟁 때 조국과 향토 수호를 위해 몸을 받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9년에 건립한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