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탈해왕릉
경주 탈해왕릉 Tomb of King Talhae,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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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탈해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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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King Talhae, Gyeongju |
한자 | 慶州 脫海王陵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174호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고대 |
해설문
국문
이곳은 신라 제4대 탈해왕(57~80 재위)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왕은 석 씨(昔氏)로 이름은 탈해’이고, 왕호는‘이사금(尼師今)’이다. 탈해왕은 62세 때 유리왕(儒理王)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13년간 재위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왕이 다파나국*(多婆那國)의 왕과 왕비 사이에서 알로 태어나 불길하다 하여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버려졌다가 신라로 떠 내려와 성장했다는 설화가 실려 있다. 탈해왕이 세상을 뜨자 성의 북쪽인 양정(壤井) 언덕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경주 금강산 남쪽 자락에 있다. 봉분을 장식한 석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1974년에 내부 구조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인 것을 확인하였다. 능의 주변에는 신라 화백회의의 근원이 되는 장소인 표암***(瓢巖)과 이를 기리기 위하여 1925년에 건립한 표암재(瓢巖齋)가 있다. 또한 탈해왕의 제향****(祭享)을 드리기 위하여 1980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온 숭신전 (崇信殿)도 있다.
- 다파나국: 신라 건국기에 있었던 나라.
- 굴식돌방무덤: 돌을 쌓아 묘를 만들어 시신을 넣고, 한쪽 벽 또는 그 벽의 일부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뒤 흙으로 덮은 무덤
- 표암(瓢巖): 표암이란 ‘박바위’, ‘밝은바위’를 뜻하는데, 신라 6촌 가운데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이 이 바위에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 하여 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69년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 건국을 의결했으며, 그후 기원전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 같이 표암은 경주 이 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이고 화백이라는 민주 정치제도의 발상지인 성스러운 곳이다. - 제향(祭享): 각종의 제사 의식(祭祀儀式)을 말함.
영문
This is known to be the tomb of King Talhae (r. 57-80), the 4th ruler of the Silla dynasty (57 BCE–935 CE).
King Talhae was a member of the Seok Clan. He ascended to the throne following King Yuri (r. 24-57) of the Bak Clan. King Talhae is said to be the son of the king of a faraway land called Dapana. He was born as an egg, which his father considered an unlucky omen, so his father put the egg in a box with jewels and sent it out to sea. It eventually came ashore in Silla territory. A fisherman found the egg, inside which was a baby boy, who grew up to become Talhae.
There are no stone structures around the tomb mound. Inside the tomb mound there is a stone chamber and a corridor connecting the chamber to the entrance. A ritual house was also built here in 1980 to facilitate ancestral rituals in honor of King Talhae. Nearby is the site of the founding of Silla’s Council of El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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